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이라는 가치는 얼핏 보면 상반돼 보인다.
하지만 책임이 전제되지 않은 자유란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렵다. 시버트, 피터슨, 슈람이 쓴 미디어 체계 이론의 고전 '언론의 4이론(강대인 옮김, 나남)'에서 자유주의와 언론의 책임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자유를 주되 그에 부합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조직 단위에서나 국가 단위에서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자유와 책임이라는 용어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추구하는 조직 문화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에린 마이어 교수가 같이 쓴 '규칙 없음(이경남 옮김, 알에치코리아)' 은 자유와 책임을 기본 가치로 넷플릭스가 어떻게 조직 문화를 혁신해 왔는가에 대해 얘기한다. 조직원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재 밀도를 높이는 방식을 주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핵심은 '규칙 없음'보다는 '규칙을 계속 혁신할 것'에 가까워 보인다.
불필요한 규칙은 없애고 필요한 규칙은 새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바람직한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내년부터 게임 앱에만 의무화했던 인앱결제를 다른 영역에까지 확장해 적용할 것으로 결정했다.
구글이 구글 플레이를 통해 서비스 하는 사업자들에게 수수료를 부과하면 사업자들에게 부담이 발생하고 되고, 그로 인해 요금이 인상돼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미디어 생태계가 플랫폼 위주로 재편되면서 특정 사업자가 전체 생태계를 조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염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마셜 밴 앨스타인, 상지트 폴 초더리, 제프리 파커는 '플랫폼 레볼루션'(이현경 옮김, 부키)에서 플랫폼이 충분히 성장하게 되면 규모와 영향력을 활용해서 전제 생태계를 조정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구글이 가지고 있는 시장 점유율과 영향력은 전체 미디어 생태계 그리고 이용자에게 큰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 '플랫폼 자본주의(심성보 옮김, 킹콩북)'에서 닉 서르닉은 플랫폼에서 창출되는 광고 수익이 감소하면 주요 서비스가 유료화되고 개방형 비즈니스 모델이 폐쇄형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이 B2B 영역에서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것과 플랫폼 시장에서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과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플랫폼이 갖는 특성이자 장점은 개방형이라는 것에 있고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iOS 기반 애플과 대비되는 점도 개방형이라는 것이었다. 수수료 부과가 일종의 진입장벽이 되면 개방형인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성격 자체가 변질될 우려도 있다.
플랫폼 생태계는 혁신의 영역이다. 방송통신 시장과 같은 제도권과는 달리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여 투자와 혁신을 통해 경쟁하고 성장한다.
여기까지는 자유의 영역이다. 플랫폼은 콘텐츠와 서비스를 매개해서 이용자에게 제공해 주는 것을 특성으로 한다. 플랫폼은 결코 혼자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들에게 콘텐츠,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자와 그것을 이용하여 광고와 같은 수익을 창출하게 해주는 이용자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이상으로 성장한 플랫폼이라면 이용자는 물론이고 자신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해 준 사업자들에게 성장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버겁다. 개인이나 큰 조직이나 책임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유를 부여받은 주체는 누구나 책임을 져야 하며 생태계 구성원들의 기여로 성장한 플랫폼이라면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이 존재한다.
구글의 인앱결제 수수료 부과를 포함하여 국내 사업자와 비교할 때 더욱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는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에서 져야 하는 책임과 자유의 범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우선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부터 찾아야 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을 법과 제도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관련 부처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피해를 입게 될 사업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 대응해야 하는지 등 쌓여 있는 현안 이슈에 대한 해결책부터 찾아야 한다.
또한, 법과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플랫폼 영역은 법제도로 접근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사업자들이 새로운 규제로 인해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 인앱결제 이슈에서 제일 중요한 사안은 각종 콘텐츠 및 서비스 요금 인상 우려가 있어 이용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구글의 수수료 부과로 인해 요금이 인상된다고 했을 때 법적으로 책임의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이용하던 서비스 요금이 갑자기 인상된다면 이용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에게 알기 쉽게 지금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가 갖는 자유와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포함하여 지금은 바람직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때이다.
하지만 영원히 적용될 수 있는 규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사업자, 정부, 이용자가 서로를 위해 최선의 길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새로운 규칙을 찾아 나가야 한다. 사업자의 혁신도 계속되어야겠지만 이용자 스스로도 각성하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
플랫폼에게 주어진 자유에 부합하는 책임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이용자의 피해를 막고 복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규칙을 계속 혁신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디어 생태계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노창희 실장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석·박사를 취득한 방송 전문가로 현재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정책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이가도 한 노 실장은 방송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의 편집위원, 방통위 보편적 시청권 연구위원회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올바른 정책적 방향에 대한 연구 및 저서 등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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