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반적인 사회 경제 구조와 국제 질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종료된다고 해도 온전히 과거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용어는 바로 '비대면'이다. 비대면 상황을 얘기할 때 자칫 간과될 수 있는 행위가 있다. 바로 의사소통이다. 비대면 상황이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나 이것이 어렵다는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입장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대면에 대한 관심과 비교할 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 극복과 이후 국민 복지를 향상하고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미디어 각 분야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융합이 진전되면서 방송통신을 포함한 미디어 전 분야에 대한 규제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를 전후로 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방송통신 융합을 비롯한 각종 융합 현상은 더욱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각종 콘텐츠와 서비스를 시공간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스트리밍 환경은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의 미디어 규제체계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각종 변화에 대응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
코로나19 사태로 확인된 것은 일과 여가 어느 측면에서든 미디어 분야가 갖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비대면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야외활동에 위험이 큰 상황에서의 여가 생활,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까지 미디어 분야는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와 관련을 맺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의 대응뿐 아니라 디지털 대전환으로 인해 각종 생활 서비스에도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19년 말, 2020년 미디어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왔다. 미국에서는 디즈니, 애플과 같은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여 스트리밍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리밍 이용량은 더욱 급증하고 있다. 콘텐츠 소비에 있어 스트리밍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 중심으로 스트리밍 이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방송광고 시장의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고,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은 구조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아직 전체적인 유료방송 시장의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혁신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국과 같이 코드커팅이 일어날 수도 있다. 유럽과 같이 미국의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국내 동영상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트리밍 서비스 활성화, 네트워크 고도화, 글로벌화 등으로 일어나고 있던 미디어 생태계의 구조변화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욱 급속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추구해야 할 규범적 가치에 대한 재정립부터 산업 진흥을 위해 구체적으로 필요한 지원방안까지 총론과 각론차원에서의 미디어 분야 규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디어 분야가 추구해야 할 규범적 가치와 관련된 논의에서 반복돼 온 것은 공익성과 산업성의 조화였다. 여전히 유효한 접근방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환경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모색과 보다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 할 수 있는 공론의 장 마련이 필요하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는 특정한 주체가 주도해 나가고 있다기보다는 시장, 정부 그리고 이용자가 함께 변화시켜 나가는 협치의 생태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업자의 투자와 혁신을 장려해 나가는 동시에 이용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규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규범적인 가치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현상과 괴리가 있는 법·제도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가령 전국민이 사용하는 단어로 정착화 된 '방송'이라는 개념은 기술적인 서비스 특성을 고려하여 협의로 해석하면 지상파 방송 외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하지만 방송의 개념을 재설정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기간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총론차원에서의 가치 설정 작업과 그에 따른 법제도적 개선 작업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글로벌 사업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두되고 있는 국내 사업자의 역차별 문제, 혁신을 가로 막고 있는 규제들, OTT 규제체계 마련 등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들이 많다. 미디어 분야는 변화가 빠르고 대응해야 할 이슈가 다양하다. 우선순위를 선별하여 각론 차원의 조속한 규제 정비도 이루어져야 한다.
법·제도의 변화는 시장 변화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의 변화를 고려할 때 시장의 변화와 이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마련이 필요하다.
OTT 사업자와 같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한 플레이어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생태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통제자 보다 조정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규제나 진흥을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것이 정책 측면에서 미래에 더욱 중요한 역할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뉴딜에 대한 준비,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의 핵심인 미디어 분야를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디지털 뉴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는 지금 구조 변화 중이다. 그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혁신이 이뤄져야 하며 그에 부응하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 바로 지금이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노창희 실장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석·박사를 취득한 방송 전문가로 현재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정책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이가도 한 노 실장은 방송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의 편집위원, 방통위 보편적 시청권 연구위원회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올바른 정책적 방향에 대한 연구 및 저서 등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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