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동남아를 중심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다 올해 4월말 영업을 종료한 훅(Hooq)을 인수한다.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슈퍼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독자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잇따라 출시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동영상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고, 플랫폼 서비스에서 빠질 수 없는 포트폴리오로 자리 잡고 있다.
'스트리밍(streaming)'이라는 용어는 동영상이나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이미 90년대부터 사용돼 왔다. 새삼스럽게 스트리밍이라는 용어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을 설명하는 중요 키워드가 된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미디어 소비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의 개념적 정의는 어렵지 않지만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스트리밍이라는 개념이 던지는 함의는 만만치 않다. 스트리밍이 의미하는 메타포를 잘 이해하는 것은 전환기를 맞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넷플릭스 효과(Netflix effect)라는 말은 스트리밍 환경에서 어떠한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 효과(유건식 옮김, 파주: 한울아카데미)'를 엮은 캐빈 맥도날드와 다니엘 스미스-로우지는 넷플릭스 효과를 마케팅 관점에서 이용자의 선택 폭을 넓히고 개인화를 더욱 향상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스트리밍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용자 중심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선택권이 주어진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디커플링(김인수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에서 탈레스 S. 테이셰이라는 소비자는 상품을 선택할 때 돈, 시간, 노력이라는 화폐를 지불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용자는 오히려 더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진 스트리밍 환경에서 이용자의 관심을 끌고 구독을 이끌어 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리밍 중심으로 콘텐츠와 서비스가 소비되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 활성화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 왔다. 지금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스트리밍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다.
'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에서 라몬 로바토는 넷플릭스를 포함한 스트리밍 사업자와 기존의 텔레비전 사업자가 상호 간에 주는 영향에 주목한다. DVD를 대여해 주는 서비스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방식과 배급방식에 있어 갈수록 기존 방송사업자와 유사해 지고 있고, 스트리밍 사업자의 레퍼런스였던 기존 방송사들은 스트리밍 사업자의 서비스와 전략을 차용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스트리밍 위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레거시 영역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라몬 로바토의 문장을 조금 바꾸어 얘기해 보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기존의 미디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으로는 현재 미디어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변화의 정도를 가늠하고 그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어떠한 측면에서 미쳤는지에 대한 맥락적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입자 수와 이용량이 급증하기는 했지만 넷플릭스 위기설이나 매각설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미디어 관련 분야 전망의 단골 메뉴다. 이 같은 전망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넷플릭스는 버는 돈만큼 콘텐츠에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OTT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탈율이 높은 서비스이기 때문에 구독자를 묶어 놓기 위해서라도 콘텐츠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게 넷플릭스가 처한 상황이다. 넷플릭스 모델이 누구나 추종해야 할 스트리밍 서비스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적합한 맥락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스트리밍 환경에서 콘텐츠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도입된 이후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부문 역시 콘텐츠 분야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넷플릭스를 통한 글로벌화를 의미하는 용어인 '넷류'에서부터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종속성이 커지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공동화(해외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 저작권 등 국내 사업자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중장기적으로 산업이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의미하는 용어)'까지 다양한 관점의 해석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 보다는 다양한 영향들에 예의주시하면서 역동적인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캐빈 맥도날드와 다니엘 스미스-로우지의 말을 다시 한 번 빌리자면 넷플릭스는 새로운 형태의 방송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방송사들이 새로운 형태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콘텐츠 사업자든 플랫폼 사업자든 자신들이 가진 사업 영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디즈니와 애플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트리밍 시장에 투자하고 국내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OTT 스트리밍 서비스 진흥을 위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더 시급한 것은 레거시 사업자들이 혁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상거래 플랫폼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동시에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기에 접어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화들을 그 맥락에 맡게 이해할 수 있는 유연함이다. 스트리밍 환경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노창희 실장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석·박사를 취득한 방송 전문가로 현재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정책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이가도 한 노 실장은 방송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의 편집위원, 방통위 보편적 시청권 연구위원회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올바른 정책적 방향에 대한 연구 및 저서 등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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