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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비상(非常)과학


정책 혁신 필요한 때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봄이다. 밭을 일궈야 한다. 씨를 뿌릴 때다. 씨를 뿌리기 전에 거름을 내야 한다. 씨를 튼튼히 한다. 잘 자라게 한다. 밭이 기름지지 않으면 씨앗도 싹트지 않고 열매도 맺지 못한다.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고, 수확하는 기쁨은 크다.

이 과정이 순조롭고 연속적일 때 희열이 몰려온다. 문제는 일구고, 씨 뿌리고, 열매 거두는 사람이 다를 때이다. 누구는 일구고, 누구는 씨뿌리고, 누구는 열매를 거둘 때 말이다.

시인 이육사는 ‘광야’에서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라고 노래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면서 ‘노래의 씨’를 뿌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은 셈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 노래의 씨를 밀알 삼아 후세대의 ‘초인’이 열매를 거두더라도 자신은 자랑스러워할 것이라 자신 있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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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非常戒嚴)으로 온 나라가 혼돈과 혼란, 깊은 절망에 빠져버렸다. 과학계는 ‘비상과학(非常科學)’으로 침통하다.

비상과학 국면에서 신진 연구자의 고통은 컸다. 2024년 R&D 예산은 2023년보다 약 14% 대폭 삭감됐는데 중견 연구자보다 신진 연구자들에 다가오는 체감 고통은 극심했다. 올해 R&D 예산은 어느 정도 회복됐는데 그 진통은 여전하다.

10억원의 예산을 그동안 열 사람의 신진 연구자에게 각각 1억원씩 지원했다. ‘윤석열 R&D’는 열 사람의 신진 연구자에게 1억원씩 지원하는 것을 ‘나눠먹기’식으로 재단했다. ‘비효율’과 ‘카르텔’로 규정해 버렸다.

10억원을 5억원으로 관련 예산을 줄이더니 급기야 그것도 특정 신진 연구자에게 ‘몰빵’했다.

신진 연구자는 이제 막 과학계에 뛰어든 이들이다. 신진 연구자는 중견 연구자와 다르다. 1명에게 ‘몰아주기’할 때 연구계에 발을 내딛는 신진 연구자를 대상으로 마땅한 평가 잣대도 없고 줄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렇다 보니 1명에게 몰아주기하는 대상은 현 정권과 친분이 있거나 혹은 특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신진 연구자를 키우는 것은 저변 확대에 있다.

일궈진 밭에 씨를 많이 뿌리는 것과 같다. 씨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솎아낸다. 많은 씨를 뿌려 저변 확대를 하지 않는다면 튼실한 모종도, 좋은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윤석열정부는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씨앗’에서부터 평가 잣대를 들이대면서 특혜와 유착 시비를 자초했다.

한 전문가는 이런 ‘윤석열 R&D’ 정책을 두고 정권이 끝나면 특혜와 유착 등 관련 비리가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자리걸음을 넘어 퇴보하는, 최악의 정책이라는 게 과학계의 하소연이다.

교육은 100년 대계요, 과학은 10년 대계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성과가 나오기까진 오래 걸린다는 말일 게다. 과학계에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윤석열 연구개발(R&D)’은 단절적이었다. ‘윤석열의 과학정책’은 일방적이었다. ‘윤석열 시스템’은 자신만이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겠다는 독식주의에 빠져 있었다.

윤석열 R&D 정책을 만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비상과학 국면에서 책임이 없지 않다. 예산 삭감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이 길은 잘못된 것이란 목소리를 낸 고위 관료가 없었던 것은 슬픈 일이다.

올해 들어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매월 ‘국민 브리핑’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소통하겠다는데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다만 기존에 나온 정책을 되풀이하면서 일방적 홍보만 할 게 아니라 R&D 삭감으로 얼마나 많은 과학자가 고통받고 있는지 구체적 현실을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이제 할 일은 분명하다. 정책 혁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일관성과 조정력이 있어야 한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상황에서 ‘매번 땅만 뒤엎는’ 일을 반복만 할 것인가.

나는 땅을 일구고, 누군가 뒤이어 오는 사람이 씨를 뿌리고, 또 다른 누군가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사람과 정권은 달라도 정책 연속성과 일관성 있는 시스템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만이 ‘비상과학(非常科學)’을 끝내는 길이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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