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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인하, 위기의 제약업계]①복지부-제약사 '소송' 전쟁…향방은?


6천506품목 약가인하 '폭탄'…100여개 제약사 '행정소송' 본격화

[정기수기자] 올해는 110년 국내 제약업계에 분기점으로 기록될 '일괄 약가인하' 조치가 시행된다.

약가인하는 그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성장해 온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건강보험 재정 확충과 국민의 약값 부담을 완화시킨다는 정부의 취지 아래 오는 4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미처 준비할 기간도 주지 않고 강행하는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몇 년 뒤 어느 쪽으로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약가인하 시행 한 달여를 남겨두고 아이뉴스24가 약가인하 정책이 가져올 올해 국내 제약산업의 추이를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복지부-제약사 '소송' 진행…향방은?

②제약업계 지각변동 가져오나

③약가인하 폭탄 'R&D'가 활로?


◆상위·중소제약사 막론 매출 타격…1조7천억원 손실 예상

올해 제약업계 판도는 한마디로 '벼랑 끝'이다. 오는 4월 시행될 일괄 약가인하로 제약업계는 약 1조7천억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번 약가인하로 전체 등재 의약품 1만3천814개 중 절반에 가까운 총 223개 회사 6천506개 품목의 보험의약품 가격이 올 4월부터 평균 22.32% 내려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4월 약가인하 예정품목 및 가격 현황' 자료에 따르면 6천586개 약 중 가격이 40% 이상 깎이는 제품은 80개, 30% 이상 1천597개, 20% 이상 3천955개로 나타났다.

나머지 2천620개는 20% 미만이며 11개는 건강보험에서 아예 삭제된다. 업체별 약가인하 대상 품목수를 보면 국내 제약사 중 한미약품의 약이 가장 많이 포함됐다. 총 196개 품목이 인하대상으로 가장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음으로는 신풍제약 155개 품목, 종근당 136개 품목, 일동제약 122개 품목, 한국유나이티드제약 108개 품목, 유한양행 103개 품목, 보령제약 101개 품목 등의 순이다. JW중외제약, 대웅제약 등도 100여개에 달하는 품목이 포함됐다. 국내 매출 10위권 내 상위제약사 대부분이 해당한다.

국내 매출 1위 기업인 동아제약은 95개 품목이 포함됐다. 상대적으로 전문의약품 비중이 낮은 녹십자의 경우 15개 품목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여, 상위 업체 가운데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이 낮은 편이다.

연매출 1천억원 미만의 중소제약들도 다수 포함됐다. 한림제약 115개 품목, 하나제약 86개 품목, 유니메드제약은 81개 품목, 삼천당제약 71개 품목, 비씨월드제약 69개 품목, 동광제약 68개 품목 등이 약가인하되면서 올해 매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매출액 순위 상위 100개 제품 중에선 대웅제약의 피해가 가장 크다. 총 7개 품목이 포함돼 1년 예상 매출 감소액이 591억원에 달한다. 다음은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로 3개 품목에 459억원, 동아제약과 한국화이자가 각각 4개, 3개 품목에 324억원씩 매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유한양행이 4개 품목 269억원, 종근당 2개 품목 184억원, JW중외제약 3개 품목 180억원 순이다.

◆약가인하 고시 후 100여개 제약사 '소송' 맞불 예상

<사진=지난해 11월 치러진 '전국 제약인 생존투쟁 총궐기대회'에서 이례적으로 국내 상위제약사 CEO들이 전면에 나서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번 약가인하로 절감되는 건강보험료는 1조7천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보험의약품 시장규모는 약 12조원이다.

보건복지부는 "3월 1일 약가인하 고시를 발표하고 1개월의 유예기간 이후 4월 1일자로 인하 가격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상위 제약사들의 경우 이번 약가인하로 연간 1천억원대의 손실이 예상된다. 삼일제약을 비롯해 중소제약사들의 경우이미 품목·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개별 업체별로 태평양, 율촌, 김&장, 세종 등 대형법무법인과 접촉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달 29일 약가인하 고시가 발표되는 직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부터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고시의 위법성을 따지는 본안소송도 제기할 태세다.

소송의 형태는 품목별 소송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A약품의 가격 인하로 인해 B제약사의 영업 손실이 얼마로 확대되는 등 경영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식이다.

또 개별 소송이 원칙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기업들을 묶어 소송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사안인 만큼 소송 형태가 비슷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그루핑(집단)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제약사들은 소송을 통해 약가가 실제 인하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는 전략이다.

한 상위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인하가 언젠가는 시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소송을 통해 약가인하 적용까지 기간을 최대한 늘리고 그동안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 등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중소 제약사 관계자 역시 "회사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선 가처분신청에 사활을 걸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소송에 참여할 제약사들은 이미 로펌 선정을 마치고 대부분 내주 초 계약을 맺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괄 약가인하 가처분 효력 정지 소송 결과가 2~3주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고시일인 29일 이전에 계약을 체결한 뒤 늦어도 3월 초에는 소송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제약사 관계자는 "다음주 초 약가 인하 소송을 위해 로펌과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며 "다른 제약사들도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의 타협안을 기대해 그동안 소송을 미뤄왔다"며 "이제 고시가 임박한 상황인 만큼 이번 소송에는 상위 제약사들을 포함해 피해를 입는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미 경동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동아제약, 명인제약, 보령제약, 유한양행, 종근당, 중외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한미약품 등 제약협회 이사장단사 11곳은 이미 소송 참여 결정했고, 이들 제약사를 포함해 총 100여개 제약사가 소송에 참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 소송을 통해 약가인하에 대한 가처분 결정이 내려질 경우 본 소송에서 지더라도 제약사들은 실제 약가인하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

연간 1천억원 가량의 손실이 예상되는 상위 제약사들의 경우 1년 6개월만 시간을 끌더라도 1천500억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만약 법원이 약가인하 집행정지를 받아들여 약가인하가 지연되면 정부도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약가인하로 절감될 비용을 감안해 올해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예년보다 대폭 낮은 2.3%로 책정했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 적잖은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에 따라, 복지부 역시 제약사들의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부의 보험약제과와 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상태다. 또 몇몇 로펌을 법정 대리인 후보로 선정해 놓고 의견과 자문을 받고 있다.

◆"소송 자제" 정부 압박에 제약사 '전전긍긍'

하지만 정부와 대대적인 약가인하 취소 소송을 준비중인 제약사들의 속내는 정작 심난하기만 하다. '소송을 제기하지 말라'는 정부 측의 무언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9일 제약사 대표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회동에 대해서 복지부는 정부의 제약산업 육성책 안내를 위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약가인하 소송과 관련해서는 복지부와 제약업계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회동이 제약사들의 약가인하 소송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복지부의 소송 중단 압박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B제약사 대표는 "소송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지만, 제약사 입장에서는 회동 자체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22일 임 장관이 비공개 일정으로 한미약품과 비씨월드제약 등 2개 제약사의 연구시설을 직접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약사들의 불안감은 더 가중되고 있다.

이날 일정 역시 업계 현안을 청취하기 위한 방문이었다고 복지부는 밝히고 있지만, 제약사들은 '소송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노골적인 압박'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100여개 제약사가 약가인하 가처분 효력 정지 소송을 제기할 방침을 세우고 일정을 조율 중이지만 아직 로펌과 정식 계약을 맺고 발표한 업체는 없다. 그만큼 이들 업체들의 속이 '벙어리 냉가슴'인 셈이다.

소송에 참여할 방침인 한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인하가 단행되면 피해규모를 파악해 소송을 진행하다는 당초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복지부의 압박이 점차 강해지고 있어 함부로 총대를 메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 누가 먼저 나설 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지난 8월 정부의 약가인하에 반발, 제약업계 사상 초유로 한국제약협회 앞에서 제약사들의 집단 시위가 펼쳐졌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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