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올해 국내 제약산업은 내년부터 실행될 약가 일괄인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통과에 따른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등 악재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정부의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으로 가뜩이나 영업환경이 악화된 제약업계에 이들 악재는 110년 업력 사상 최대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내년도 매출 손실을 우려한 적지 않은 제약사들이 인력 및 예산 감축을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으며, 이에 따른 고용 불안감 역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13개 보건의약단체들의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자정 선언에도 불구,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리베이트 적발 건은 제약업계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반토막' 약가인하에 제약업계 '울상'
정부의 8. 12 일괄 약가인하 발표로 인해 국내 제약업계가 받을 타격은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한층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년부터 약가인하가 진행되면 특허가 만료되는 오리지날약 및 제네릭(복제약)의 가격은 절반가량 떨어진다.
특허만료 후 1년 동안은 기존가격 대비 오리지날약은 70%, 복제약은 59.5%만 인정된다. 1년이 지나면 신약과 복제약 모두 특허만료전 약값의 53.55%선으로 떨어진다.
이같은 방식은 기존 약에도 일괄 적용돼 내년부터는 대부분의 약들이 특허만료 전 약가의 53.55%로 '반토막'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11월 1일 원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약가제도 개편을 위한 세부규정(고시)을 행정 예고했고,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경우 기등재의약품의 가격 인하 고시는 내년 3월 중 이뤄지며, 실제 약가는 4월부터 인하된다.
이에 따라 각 제약사마다 내년도 영업이익이 평균 20%가량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막대한 손실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약업계는 이에 반발해 110년 업력 사상 최초로 유례없이 궐기대회를 개최, 실력 행사에 나섰지만 정부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약가인하 시행 저지에 실패한 제약업계는 현재 약가 일괄인하에 대한 대규모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은 정부가 기등재의약품 약가인하 확정고시를 하는 내년 3월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돼 법원의 판결 결과와 무관하게 관련 업계에 거센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각 제약사들 역시 매출 손실을 메우기 위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인력감축 등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실제로 한 다국적제약사는 최근 전체 영업사원의 20% 내외 규모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인력감축과 임금동결 등을 통한 구조조정 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내년부터 시행될 약가 일괄인하 제도로 인해 각 제약사마다 수백억원대에서 많게는 1천억원대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각 제약사들마다 인력감축 등을 통한 비용절감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FTA 통과 '신약 특허권 강화'…제약산업 최대 4천900억 손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약산업은 FTA 최대 피해 산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번 비준안에서 제약업계의 핵심 쟁점은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도입이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오리지날약의 특허권이 존속하는 기간(출원일로부터 20년) 내에 국내 제약사가 제네릭의 제조·시판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 식약청이 특허권자에게 이를 통보하게 함으로써 특허권 침해여부를 사전에 판단하게 해 문제가 없을 경우 허가를 해 주는 제도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내 제약사들은 저가의 복제약을 자유롭게 개발하거나 시판할 수 없게 돼 제네릭이 수입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약업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제약협회는 지난 2007년 한미FTA 타결로 인한 관세철폐, 특허연장 등의 영향으로 제약업계의 매출 손실 규모가 연간 1천400억~4천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고가의 오리지날약보다 가격이 저렴한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이 제 때 출시되지 못하거나 생산 자체가 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비싼 오리지날약을 구입할 수 밖에 없어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고가의 오리지날약 품목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게 돼 자칫 제약산업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면서 제약사 부담이 커져 약값이 인상되면 결국 국민들의 부담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쌍벌제 시행 1년, 리베이트 여전히 성행
지난해 11월 28일 쌍벌제 시행 이후 지난 1년간 정부는 검경찰을 비롯해 공정위, 복지부 등을 동원해 범정부 차원의 의약품 리베이트 단속을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서울중앙지검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이 쌍벌제 시행 이후, 리베이트를 받은 2천여명의·약사(의사 1644명, 약사 393명)를 무더기로 적발, 이 중 일부를 기소했다.
검찰은 또 약사법에 의료관계인 등을 추가, 리베이트 연루자 모두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건의해 제약시장 환경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적발은 13개 보건의약단체의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자정선언이 이뤄진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밝혀진 것으로, 앞으로 업계 내 리베이트 자정 노력에 대한 의문을 낳을 전망이다.
◆"박카스는 슈퍼로"...상비약은?
이후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를 두고 진통을 거듭한 끝에 최근에는 복지부와 대한약사회가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등을 24시간 편의점에서 판매하기로 잠정 합의, 향후 약국외 장소에서 판매될 일반의약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관련 법안을 내년 2월 국회에서 처리하고 내년 8월 시행을 목표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법개정에 강력히 반대해 온 약사회와의 합의에 바탕을 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약사들 내부에서 반발이 거세다. 약사회가 복지부와의 밀실협상으로 일반약 슈퍼판매의 물꼬를 터주었다며 젊은 약사들을 중심으로 약사회장과 집행부 사퇴 등을 촉구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약사들의 표를 의식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아직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어 상비약 약국외 판매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의 내년 국회 통과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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