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SK하이닉스가 D램 속도 확보를 위한 기술 경쟁에서 삼성전자에 비해 또 한 발 더 앞서 나간 분위기다. 특히 최근 메모리 업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고성능, 저전력 특성을 갖춘 'LPDDR' 시장에서 더 기술력을 끌어올리며 주목을 받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자체 개발한 모바일용 D램 LPDDR5T를 대만 반도체 기업 미디어텍(MediaTek)이 곧 출시할 차세대 모바일 AP에 적용하기 위한 성능 검증을 마쳤다.
LPDDR5T는 지난 1월 SK하이닉스가 개발한 현존 최고속 모바일용 D램으로, 동작 속도는 최고 초당 9.6Gb(기가비트)다.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에서 표준화 등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SK하이닉스는 LPDDR5T 제품 성능 검증을 위해 지난 2월 세계적인 모바일 AP 기업인 미디어텍에 샘플을 제공했다.
미디어텍이 SK하이닉스의 LPDDR5T를 적용해 새롭게 선보이는 모바일 AP는 '디멘시티 플랫폼' 시리즈다. 모바일 AP는 PC의 메인보드 칩셋 기능을 하나의 칩에 구현한 것으로, 모바일 기기 내 OS, CPU, 그래픽카드, 메모리 등 여러 장치의 칩과 기능을 모두 포함한다. 이번 성능 검증은 플래그십(최상위 모델) 디멘시티 플랫폼을 적용한 모델에서 진행했다.
JC 수(JC Hsu) 미디어텍 무선통신사업부 부사장은 "SK하이닉스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미디어텍의 차세대 주력 제품이 한층 높은 수준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고객들은 업그레이드된 미디어텍 제품을 통해 획기적으로 성능이 개선된 디바이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텍 등에 업은 SK, '모바일 D램' 1위 삼성 넘어설까
이번 SK하이닉스, 미디어텍의 협공 여파로 속도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게 된 삼성전자는 LPDDR, 모바일 AP 시장에서 기술력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업계 최초로 14나노 기반 LPDDR5X를 개발했고, 지난해 말에는 세계 최초로 초당 8.5Gbps의 전송 속도 신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올해 1월 현존 최고 속도인 모바일용 D램 'LPDDR5T'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서 속도 면에서 밀리게 됐다. 'LPDDR5T'의 동작 속도는 전작인 LPDDR5X 대비 13% 빨라진 9.6Gbps다. SK하이닉스는 최고속도를 구현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규격명인 LPDDR5 뒤에 '터보(Turbo)'를 붙여 제품명을 자체 명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1Gbps 차이는 모바일 기기에 탑재할 경우 초당 4GB(기가바이트)의 고화질 영화 2편을 더 처리할 수 있는 속도"라며 "8.5Gbps가 최고 속도인 삼성전자의 제품에 비해 속도면에서는 SK하이닉스가 상당히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에서 그동안 9.6Gbps 동작 속도는 2026년 이후 출시 예정인 LPDDR6에서 구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며 "하지만 자사가 선보인 LPDDR5의 확장 버전인 LPDDR5T가 연내 양산이 시작되면 시기를 3년이나 앞당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삼성전자는 모바일 D램 시장에서 줄곧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서두르지 않고 기존 로드맵 대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모바일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57.6%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2, 3위는 SK하이닉스(18.8%), 마이크론(17.9%)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장 수요에 맞춰서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는데 아직 시장 메인스트림(주류 수요)은 7.5Gbps에 머물러있다"며 "더 빠른 속도가 요구되는 시장이 개화하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SK하이닉스는 'LPDDR5T' 제품이 표준화되고 시장 공급이 본격화되면 내년부터 모바일용 D램의 세대 교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류성수 SK하이닉스 D램 상품기획담당 부사장은 "LPDDR5T의 시장 진출 과정에서 미디어텍과의 파트너십이 큰 역할을 했다"며 "이번 성능 검증을 시작으로 제품 공급 범위를 넓혀 모바일용 D램 시장의 주도권을 더욱 견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텍, 프리미엄 모바일 AP서도 '약진'…설 자리 줄어든 '엑시노스'
이번 일로 삼성전자는 모바일 AP 시장에서도 다소 움츠러들게 됐다. 플래그십(최상위 모델)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퀄컴에게 '엑시노스' 자리를 빼앗긴 상황에서 미디어텍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리며 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디어텍은 과거 중국 중저가 스마트폰에 보급형 칩셋을 공급하며 시장 점유율을 키워왔는데, 2019년부터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디멘시티 9000'을 출시하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TSMC의 4나노 공정을 활용해 2021년 11월 출시한 '디멘시티 9000'은 성능 측정 결과 퀄컴의 '스냅드래곤8 1세대' 등 주요 팹리스의 최신 모바일 AP보다 우위를 나타냈다.
SK하이닉스의 LPDDR5T를 적용해 연내 출시하는 차세대 모바일 AP '디멘시티 플랫폼' 시리즈도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미디어텍에 따르면 이 AP는 모바일 기기 중 가장 빠른 동작 속도인 9.6Gbps 메모리가 적용되는 첫 제품이다. 플래그십 디멘시티 플랫폼을 적용한 모델을 대상으로 이번에 성능 검증을 했다는 점에서, 이를 앞세워 미디어텍이 기존보다 플래그십 시장에서 얼마나 더 인정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가 플래그십 모델에 '디멘시티'를 채택하고 있지 않지만, '저가 AP나 만들던 회사'라는 미디어텍에 대한 시장 평판은 차츰 변하고 있다"며 "코텍스-X4를 채택한 '디멘티시9300'은 퀄컴 '스냅드래곤8 3세대'나 '애플 A17'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통해 어떤 무기를 꺼내들 지도 관심사다. '엑시노스'는 지난해 초 '엑시노스 2200'이 성능 저하, 발열 등의 논란을 겪은 후 삼성전자 '갤럭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서 여러 차례 탑재되지 못한 바 있다. 실제로 '갤럭시S23' 시리즈와 폴더블폰인 '갤럭시Z5' 시리즈, 태블릿 PC인 '갤럭시탭S9' 등 삼성전자 MX사업부가 올해 출시한 프리미엄폰과 태블릿 PC에는 퀄컴의 '스냅드래곤8 2세대'만 전량 탑재됐다.
이 탓에 모바일 AP 시장 내 점유율도 곤두박질쳤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4%에 그쳐 전 분기(8%)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21년 4분기(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엑시노스'의 자리를 빼앗은 퀄컴은 점유율이 큰 폭 증가해 전분기 대비 9%p 늘어난 28%까지 치솟았다. 점유율 1위는 보급형 AP를 주력 제품으로 삼는 미디어텍(32%)이 차지했고, 애플(26%)과 중국 유니SOC(8%)는 각각 3위, 4위에 올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관계자는 "삼성전자 '엑시노스'는 삼성전자가 인소싱과 중국 ODM 아웃소싱의 스마트폰 포트폴리오 전략을 다시 재정비하면서 점유율이 4% 그쳤다"며 "그 결과 미디어텍과 퀄컴이 중가 4G, 5G부터 플래그십 모델까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엑시노스'의 올해 1분기 점유율은 6.8%로, 미디어텍(37.0%), 퀄컴(30.1%), 애플(16.3%), 유니SOC(8.7%)에 이어 5위에 그쳤다. 2분기 역시 '엑시노스 1330'을 탑재한 '갤럭시A14', '갤럭시M14' 등이 출시됐음에도 전분기 대비 0.3%p 밖에 오르지 않은 7.1%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엑시노스'가 부침을 겪는 사이에 미디어텍은 시장 1위로 도약했다"며 "미디어텍이 양적 팽창에 그치지 않고 최근 프리미엄 라인업까지 외연을 확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엑시노스' 부활이라는 과제를 안은 삼성전자에 걸림돌로 작용할 듯 하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선 미디어텍의 선전 속에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에 '엑시노스'로 다시 부활할 수 있을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엑시노스'가 '갤럭시S23 FE'와 '갤럭시S24' 시리즈에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다만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엑시노스'를 탑재할 것이란 것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노 사장은 "칩셋 전략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하고 있다"며 "해당 연도에 최적의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는 전략 파트너사와 협력하고 이를 지역별 특성에 맞춰 활용한다는 기본 방침"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어느 회사와 어떻게 언제까지 협업한다기보다는 파트너들과 선행 개발해서 최고의 AP를 플래그십 모델에 적용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경계현 사장이 DS부문장으로 취임한 이후 시황 부진 여파도 있지만 제품 하자 등의 문제로 삼성전자가 AP 사업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다"며 "삼성전자가 성능 저하, 발열 등의 논란을 겪은 '엑시노스 2200'을 개선해 '갤럭시S23 FE'에 탑재하면서 자존심 회복과 재고 소진 효과를 누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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