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국내외 정세 속에 빠르게 변화하는 주요 기업들과 총수들의 움직임을 [유미의 시선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각 기업의 전략 방향을 비롯해 트렌드 이슈, 알려지지 않았던 재계 후일담까지 독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소재들로 알차게 채워가겠습니다. [편집자 주]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차세대 메모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1위 자리를 두고 SK하이닉스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2년 내 점유율 격차를 좁힐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서로 자사의 기술 우위를 강조하며 '업계 1위'를 주장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의 우세 속에 삼성전자가 실제 점유율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0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50%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각각 40%, 10%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CSP) 수주 증가에 힘입어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차이를 크게 좁힐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올해 46∼49%, 내년 47∼49%로 비슷한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업체의 HBM 시장 점유율 합산 전망치는 95% 수준이다.
반면 주로 HBM3e 개발에 주력해 온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의 공세로 향후 2년간 시장 점유율이 소폭 하락할 것으로 관측됐다. 트렌드포스가 추산한 마이크론의 HBM 시장 점유율은 올해 4~6%, 내년 3~5%다.
트렌드포스는 "SK하이닉스가 현재 엔비디아 서버 GPU의 주요 공급업체로 HBM3 생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삼성전자는 다른 CSP들의 수주를 충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내가 1위"…시장서 인정한 SK VS 반격 나선 삼성
이 같은 전망이 나오면서 삼성전자는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당초 삼성전자는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자사가 'HBM 시장 1위'라고 자체적으로 주장해왔다. 특히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사장은 지난달 5일 임직원 대상 행사에서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시장 점유율이 과반 이상이라고 밝힘으로써 업계 1위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한편, 경쟁력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경 사장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SK하이닉스는 곧장 반격했다. 같은 달 12일 서울에서 비공개 IR을 열고 주요 기관투자가,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40여 명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우위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에 대해 "HBM 개발이나 상품기획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며 "경쟁사(삼성전자)가 메모리·로직 반도체 공정을 동시에 제공하는 만큼 HBM의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고객사들은 어느 한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GPU)와 TSMC(파운드리), SK하이닉스(HBM) 등 각 분야에서 시장을 이끄는 업체들의 협업이 더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메모리 사업을 병행하는 삼성전자보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SK하이닉스를 선호하는 고객이 더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26일 진행된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도 리더십이 굳건함을 강조했다. 박명수 SK하이닉스 D램 부사장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초기부터 오랜 기간 경험과 기술 경쟁력을 축적해왔다"며 "이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시장 선두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삼성전자는 또 다시 발끈했다. 다음날 진행된 삼성전자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가 HBM 선두업체로, HBM2를 주요 고객사에 독점 공급했다"며 "후속으로 HBM2E 제품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이어 "HBM3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용량으로 고객 오퍼가 진행 중"이라며 기술력도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특히 AI(인공지능)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각광 받고 있는 HBM3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비해 대응이 늦어 경쟁력이 다소 뒤처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2021년 10월 업계 최초로 개발한 4세대 제품인 'HBM3'를 지난해 6월 업계서 첫 양산했다. 이어 올해 4월에도 세계 최초로 D램 단품 칩 12개를 수직 적층해 현존 최고 용량인 24GB(기가바이트)를 구현한 HBM3 신제품을 개발, 현재 고객사 검증을 받고 있다.
덕분에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주요 고객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실제 챗GPT에 탑재되는 엔비디아의 'A100'에는 SK하이닉스의 HBM2E가 탑재돼 있다. 차세대 엔비디아 GPU인 'H100'에도 SK하이닉스의 HBM3가 적용됐다. 최근에는 HBM3보다 성능·용량을 업그레이드한 HBM 5세대 제품인 HBM3E 양산을 준비 중이다. 이 제품은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로부터 마이크론과 함께 샘플 입고 요청을 받았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 연말 HBM3 양산에 나선다.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에서 HBM3 비중은 올해 6%에서 내년 18%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4분기부터는 삼성전자도 HBM3 일부 물량을 엔비디아에게 납품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는 충남 천안사업장에 배치된 HBM 설비 생산능력을 지금의 두 배가량 확대하기 위해 내년 말까지 수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 AMD 등에 HBM을 납품할 예정으로, 시장 요구에 맞춰 HBM 5세대 제품인 HBM3P도 연내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HBM3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산하고 있고, 엔비디아 H100에 단독 공급 중"이라며 "현재 HBM 제품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경쟁사와 비교해 한 세대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그간 모바일과 HPC(고성능컴퓨팅)에 주력하면서 HBM은 우선 순위로 두지 않았다"며 "HBM이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미미한 탓에 SK하이닉스보다 성장성을 늦게 알아본 삼성전자의 대응이 다소 늦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트렌드포스가 이번 전망치에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고 본 것은 경 사장 등이 주장한 부분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해석된다"며 "삼성전자의 움직임으로 볼 때 빠른 속도로 격차를 줄여 시장에서도 인정할 만큼 SK하이닉스를 꺾고 우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시장 2%"…AI칩 바람 탄 HBM, 내년까지 초고속 성장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제품이다. 원래는 그래픽 작업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면서 대량의 데이터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HBM의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AI 시장이 커질수록 HBM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시장에 대한 성장성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HBM 공급량이 오는 2024년까지 연평균 10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AI 개발에 있어 중추적인 해가 될 것"이라며 "이는 AI 트레이닝 칩에 대한 상당한 수요를 유발하고, 이에 따라 HBM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HBM 수요는 3세대인 HBM2e에서 4세대인 HBM3로 옮겨 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수요 비율은 HBM2e가 70%로 압도적이고, HBM3는 8%에 불과했다. 그러나 HBM3를 채택한 칩이 잇따라 시장에 출시되면서 ▲올해 HBM2e 50%, HBM3% 39% ▲내년 HBM2e 25%, HBM3 60%로 판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됐다.
업계 관계자는 "HBM은 4세대 HBM3에 이어 5세대 HBM3e, 6세대 HBM4 순으로 개발된다"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5세대와 6세대 제품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엔비디아가 HBM3e를 탑재한 차세대 AI 칩 'GH200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을 선보이며 내년 2분기에 이 '슈퍼칩'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부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며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밖에 안되지만 AI칩 붐이 일고 있는 만큼 앞으로 시장이 성장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지금보다 더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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