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애플이 오는 6월 열리는 애플 세계 개발자회의(WWDC)에서 신형 혼합현실(MR) 기기를 선보일 예정인 가운데 삼성디스플레이가 이를 노리고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 내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른 확장현실(XR)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은 만큼,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해 나간다는 각오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미국 마이크로 OLED 기업 이매진과 2억1천800만 달러(약 2천900억원) 규모로 이매진 주식을 모두 인수하는 내용의 최종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매진은 마이크로 OLED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특히 이매진 '다이렉트 패터닝(dPd)' 기술은 확장현실(XR), 가상현실(VR) 구현에 필요한 기술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XR 기기에 적용 가능한 적(R)·녹(G)·청(B) 올레도스(OLEDoS, OLED on Silicon) 기술 확보를 위해 이번 합병을 결정한 것으로 분석했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XR기기는 향후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클 것"이라며 "이매진의 기술을 통해 더 많은 고객에게 혁신적인 제품을 제공하고 XR 관련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올레도스 기술로 日 소니 넘보는 삼성…애플 공급 노려
실리콘 기판 위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증착하는 올레도스 기술은 크게 ▲화이트(W)-OLED에 컬러필터(CF)를 형성하는 'WOLED+CF' 방식과 ▲RGB 화소를 같은 층에 인접 증착하는 'RGB' 방식 올레도스 방식으로 나뉜다. WOLED+CF 올레도스는 WOLED를 발광원으로 사용하고, RGB 컬러필터로 색을 구현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올레도스는 WOLED+CF 방식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 애플에는 RGB 방식 올레도스를 개발해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 소니 등이 개발 중인 WOLED+CF 방식 올레도스는 진입장벽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RGB 방식 올레도스를 다른 업체보다 빨리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RGB 방식 올레도스를 양산하기까지는 3~4년 이상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오는 6월 애플이 첫 번째 혼합현실(MR) 기기를 선보이는 것을 기점으로 마이크로 OLED를 탑재하는 XR 기기의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애플은 오는 6월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WWDC(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수 년간 준비해 온 MR 헤드셋을 공개할 예정으로, 이름은 '리얼리티 원' 또는 '리얼리티 프로'로 알려져 있다.
'리얼리티 프로'는 신형 맥북에 들어가는 'M2' 칩과 혼합현실 전용 칩인 '리얼리티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기기 외부·내부에 10개 이상의 카메라, 8K(7천680x4천320) 해상도(한 렌즈당 4K) OLED 디스플레이 등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3천 달러(약 396만원)에 책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아이폰14 프로'보다 2배가량 비싼 가격이다.
'리얼리티 프로'는 WOLED+CF 방식 올레도스를 적용한다. 해당 디스플레이는 소니가 제작하며, LG디스플레이도 WOLED+CF 방식 올레도스를 개발 중이다.
애플 전문 분석가인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발표는 AR·VR 헤드셋 시장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기존 소니, 메타 등에서 출시한 헤드셋 제품은 매력적인 소프트웨어가 부족해 제품 보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 기대 이하 성적 거둔 메타…XR 시장 침체기 속 애플 '자신감'
실제로 관련 시장은 최근 침체를 겪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VR 헤드셋 판매량은 전년보다 2% 줄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AR 헤드셋과 함께 12% 이상 판매량이 감소했다. 시장분석업체인 CCS인사이트 조사에서도 VR 헤드셋과 AR 헤드셋의 지난해 전 세계 출하량은 960만 대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이처럼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메타버스에 공을 들였던 기업들은 잇따라 포기하는 분위기다. 2021년 사명까지 '페이스북'에서 바꾼 '메타'는 지난해 11월 이후 2만 명 이상을 해고하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메타버스 부문 직원이었다. 글로벌 콘텐츠 기업 월트디즈니는 최근 메타버스 전략 부서를 해체했고, MS도 최근 가상현실 작업 공간 프로젝트인 알트스페이스VR(AltspaceVR) 서비스를 중단했다.
소니는 올해 플레이스테이션 VR2 헤드셋의 생산 계획을 약 20%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MR 헤드셋 브랜드 피코(Pico)의 지난해 출하량은 당초 예상보다 40%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것은 메타버스에서 인공지능(AI)으로 시장의 관심이 옮겨갔기 때문"이라면서도 "과거 '애플워치'가 첫 발매 시기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광범위하게 보편화된 것처럼, 애플이 '리얼리티 프로'로 MR 기기의 대중화를 이뤄내 메타버스 관련 시장을 키워갈 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팀 쿡 애플 CEO는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R 기기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팀 쿡은 "사람들이 의심했던 분야에서 애플은 성공을 거둬왔다"며 "구글과 메타의 가상현실 제품과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애플 發 XR 시장 성장 확대 기대감 ↑…삼성도 '참전' 예고
애플의 움직임에 맞춰 이미 시장에 진입한 메타, 소니 등도 올해 대응에 나섰다. 소니는 지난 2월 신형 VR 기기 '플레이스테이션 VR2'를 출시했으나, 첫 달 판매량은 27만 대에 그쳐 기대보다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메타는 올해 말 신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참전'을 예고한 상태다.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2월 말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22에서 "메타버스 플랫폼 기기가 요즘 화두"라며 "삼성전자도 잘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달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는 메타버스와 로봇을 신성장 사업으로 꼽고 "고객이 언제 어디서든지 메타버스 경험을 할 수 있게 최적화된 메타버스 디바이스와 솔루션을 개발하겠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올해 2월 '갤럭시 언팩' 행사에선 구글, 퀄컴과 함께 XR 삼각 동맹을 선언하며 차세대 XR 사업에서의 협업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퀄컴은 '칩셋 설계력', 구글은 AR 글래스 등을 만들고 운영체제(OS)와 생태계를 만든 '노하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등 기기 '제조 능력'을 강점으로 지니고 있어 서로 시너지를 낼 것이란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MX사업부에 관련 조직을 만들고 거래처들과 신제품 양산 논의에 나선 상태지만, 구체적인 제품이나 플랫폼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 사장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건 한 회사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며 "큰 의미에서 XR 생태계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애플에 이어 삼성전자·퀄컴·구글의 삼각동맹이 시장에 참가하면 XR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세계 XR 관련 시장 규모는 2025년 540조원에서 2030년 1천700조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1년 1천100만 대였던 글로벌 XR 기기 출하량이 2025년 1억500만 대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빠르면 상반기에 삼성전자의 XR 기기가 출시될 것"이라며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삼성전자에 부족했던 센싱 전용 반도체와 XR 전용 플랫폼이 보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XR 시장은 미래 IT 기기를 대표할 것"이라며 "중국도 국가적으로 XR 산업을 키우려 하는 만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심해질 것"이라고 봤다.
◆XR에 기대 거는 韓 디스플레이…中·日 쫓는데 '분주'
전자 부품 업계는 XR 시장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으로 보고 기대를 걸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에 이르고 TV 수요가 정체된 상황인 만큼, XR 시장에서 수익성이 높은 부품의 수요 증가가 이어지면서 실적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이다.
이에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광산업진흥회는 '확장현실(XR) 기기 핵심 제조 산업 간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국내 디스플레이, 반도체, 광학부품업계가 국내 XR 제조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공급망 분석과 정책 건의, 공동 연구개발 등을 진행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날 이매진 인수 외에도 최근 충남 아산 탕정에서 마이크로 OLED 파일럿 라인 구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관계사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올해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의 XR기기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 MR 기기 탑재를 노리고 부품·장비사 등에 오는 6월까지 시제품 생산을 위한 샘플 납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올해 'CES 2023'에서 0.42인치 마이크로 OLED 시제품을 선보인 바 있는 LG디스플레이는 마이크로OLED 개발과 관련해 설계는 LX세미콘, 웨이퍼 가공은 SK하이닉스와 이미 협력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19년부터 관련 시제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마이크로 OLED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보다 다소 뒤처져 있다는 얘기들이 종종 있었다"며 "이매진 인수가 삼성의 마이크로 OLED 기술력을 다소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두 회사 모두 제대로 된 제품을 LG처럼 아직 선보인 적이 없어 향후 나올 제품의 경쟁력이 얼마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 일본 기업이 애플, 메타 등 빅테크와 손잡고 최근 XR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추격자 입장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이라며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이 초고화질, 고휘도 성능을 모두 만족하는 핵심 기술에 집중하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더 서둘러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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