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31> 실크로드 서역북로 '투루판'에서 '쿠차'로


[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투루판 고대 유적 '아스타나 공동묘지, 베제크리크 석굴'은 못 갔다. 투루판 외곽에 '아스타나' 공동묘지가 있다. 서기 4세기부터 8세기까지 귀족 묘지이다.

현재 우리의 국립 중앙박물관에도 아스타나 고분 유물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 일본인 '오타니 탐험대'가 약탈해 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가 조선총독부를 거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아래 벽화는 중국인 창조 신화에 나오는 '복희와 여와'의 그림으로 몸 하반신은 뱀의 형상이고, 상반신은 '복희와 여와' 벽화이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1907년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근처에서 8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는 서기 313년 돈황에서 출발, 목적지는 '사마르칸트'(현재 우즈베키스탄 도시)이다. 편지를 갖고 가던 사람이 분실한 '편지 8통'을 이곳에서 발견하였다. '소그드문자'로 쓴 8통의 편지는 서기 313년 또는 314년에 쓴 '종이'에 쓴 편지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종이는 후한 시대 '채윤'이 발명한 것으로 종이가 발명한 지 300여 년도 안 되는 이른 시기에 종이에 쓴 귀한 편지이다. 비가 적게 오는 건조한 지역이라 1700년 동안 보존된 것이다.

편지는 지금은 없어진 '소그드어'로 씌어 있다. 소그드 상인의 부인(이름 미우나이)이 돈황에서 수천킬로 떨어진 천산산맥 넘어 사마르칸트에 살고 있는 친정 부모에게 보내던 편지이다.

돈황의 '미우나이' 여인이 친정 부모에 보내는 편지 내용은 "부모 말을 안 듣고, 남편 따라 중국 온 것을 후회한다. 남편이 빚만 남겨 놓고 도망가서 딸과 함께 살기가 어렵다. 남편 친구, 사업 관련 사람 등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되었다. 딸하고 둘이 살고 있는데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도망간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도 함께 발견되었다. "당신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개나 돼지의 아내가 되겠다. 가난해서 딸과 함께 남의 양 치는 일을 도우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당신 빚 때문에 3년 동안 돈황을 못 떠나고 있다. 사마르칸트에 갈 여비 은화 20닢이 필요하다."

1700년 전 고향 사마르칸트(실크로드 고대도시)에 돌아가고 싶었던 '미우나이' 부인의 애절한 사연이다. 편지가 사마르칸트에 못 가고 중간에 투루판에서 분실되었으니 미우나이 여인은 친정에 못 돌아갔을 것 같다.

이 편지는 서기 313년경 소그드 상인이 장안, 돈황, 사마르칸트 등 실크로드에서 광범위하게 국제 중계무역을 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베제클리크 석굴. [사진=윤영선]

실크로드 상인의 대명사인 소그드 상인(이란계 종족)은 당나라가 멸망한 10세기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안록산 난'을 일으킨 안록산이 소그드인이다. 안록산 반란이 진압된 후 당나라는 소그드인에 대해 대대적 보복을 하였고, 이후 소그드인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화염산 아래 계곡에 유명한 '베제클리크' 석굴이 있다. 이곳 석굴의 중요한 벽화는 20세 초 독일과 러시아 도굴꾼이 거의 뜯어 갔다. 독일에 약탈해 간 인류사적 유물은 2차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유실되었다. 6년 전 베제클리크 석굴을 갔었는데 남아 있는 부처상 눈은 이슬람교도에 의해 모두 훼손되어 있다. '마니교'의 중요한 벽화가 베제클리크 석굴에 남아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의 종교적 유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도 일본의 '오타니 원정대'가 베제클리크 석굴의 벽에서 뜯어온 불상 벽화가 있다. 석굴에 그려진 벽화를 칼로 잘 도려내서 멀리 일본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 석굴의 귀중한 유산한 지금은 사라진 '마니교' 벽화이다.

'마니교'는 서기 3세기 페르시아의 '마니'가 창설한 종교이다. 영어단어 '마니아'는 마니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불교'의 교리를 혼합한 것으로, 선의 신과 악의 신이 투쟁하는 현실에서 선의 신이 승리하도록 선하게 살자는 취지의 종교이다.

8세기 위구르 왕국이 마니교를 국교로 채택한 유일한 국가였다. 위구르 왕국 멸망 후 마니교는 역사에서 사라짐에 따라 베제클리크 벽화, 돈황석굴 장경동에서 발견된 마니교 문서가 유일한 자료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베제크리크 석굴 보상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오늘은 8월 1일이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는 매우 늦은 시간에 8시 30분에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호텔 조식은 6시 반 또는 7시에 시작하는데 이곳은 매우 늦다. '신장 타임' 때문에 직원이 아침 늦게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서 늦게 일을 시작한다.

우리는 늦은 아침 식사 후 9시 반 다음 목적지 쿠차를 향해 출발한다. 오늘은 타클라마칸 사막 서역북로 660킬로를 달려야 한다. 점심은 휴게소 사정을 알 수가 없어서, 시내 가게에서 빵(란)을 사 가지고 가다가, 중간에 먹기로 했다.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일대일로' 정책으로 파미르고원으로 가는 고속도로 길은 매우 잘되어 있다. 투루판은 실크로드 '서역북로' 교통의 요지로, 투루판에서 북쪽으로 140킬로를 올라가면 신장성 성도인 '우루무치'를 지나 '천산북로'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사막의 휴식 시간에 간식으로 먹기 위해서 투루판 특산물 청포도를 샀다. 투루판 외곽 도로변에 청포도를 파는 노점상들이 많다. 투루판의 청포도는 과거에 황실의 진상품으로 유명하다. 빵떡모자를 쓴 위구르 노인과 여드름 많은 중학생 손자가 장사하는 노점상에서 '청포도'와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개구리참외'를 샀다. 사막을 이동하면서 물 대신 먹을 예정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위구르 노인의 청포도 노점상. [사진=윤영선]

가격은 매우 저렴하고, 금방 따온 청포도는 당도가 높고 매우 신선하다. 여름철 강한 햇볕과 높은 기온으로 포도, 하미과, 수박 등 과일이 빨리 익고 당도가 매우 높다.

위구르 남성들은 더운 여름에도 납작한 빵모자를 쓰고 있다. 여성들은 색상이 있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구르 민족의 풍습이 농촌이라서 잘 보존됨을 느낀다. 고대 중국은 이 지역을 '오랑캐 호(胡)'자를 붙이는 호서(胡西) 지역이라 불렀다. 당나라 시대 호서(胡西) 지역은 천축(인도), 페르시아(이란)까지 확대되었다.

기원전 2세기 '한 무제' 때 서역의 월지국과 군사동맹을 위해 파견된 '장건'은 동맹은 실패했지만 아랍과 페르시아 등 다양한 서역 과일을 중국으로 가져왔다.

포도, 복숭아, 수박, 석류 등은 장건이 가져온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한자 오랑캐 '호(胡)'자로 시작하는 "호도, 호산(마늘), 호마(참깨), 호초(후추), 호유(완두콩)" 등이 서쪽에서 왔음을 표시한다. 투루판의 청포도도 서역에서 전래된 특산물이다. 실크로드 교역을 통해서 동양의 식탁이 풍족해졌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타클라마칸 사막의 쿠차 대협곡. [사진=윤영선]

포도를 건조하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구멍이 많은 흙벽돌 건물이 매우 많다. 황량한 타클라마칸 사막의 경치를 보면서 자동차 안에서 맛있는 청포도를 먹고 있다. 학창 시절 즐겨 낭송했던 이육사 선생의 '청포도' 시가 생각난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타클라마칸 사막은 33만제곱킬로에서 최고 37만제곱킬로(남한 10만제곱) 넓은 면적이다. 과거 실크로드 상인들은 '침묵의 바다', '죽음의 바다'라고 무서워한 곳이다.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땅'이라 한다.

'사하라사막'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막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타림분지'의 중앙에 있다. 남으로 곤륜산맥(도교의 성산)이 있다. 북으로 천산산맥, 서쪽으로 힌두쿠시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히말라야 산계)으로 둘러싼 지역이다. '지구의 배꼽'으로 불린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비구름이 히말라야산맥과 곤륜산맥에 막혀서 비가 안 오는 지형이다. 높은 산맥에 쌓여 있는 만년설과 빙하의 눈 녹은 물이 이 지역의 생명수이다. 현재 우리가 지나는 사막은 메마르고 딱딱한 황무지이다. 쿠차로 가는 사막의 중간에 거대한 쿠차협곡과 타림강이 흐른다. 수십 킬로의 긴 '쿠차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연상된다.

해발 1500미터의 험준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조심스럽게 달린다. 90도 직각으로 꺾인 절벽 길을 화물차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달린다. 광대한 사막의 지형과 모양도 매우 다양하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과 구법승들이 사막의 높은 산맥과 협곡을 넘어올 때 고난이 상상된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사막에서 간단한 '란' 빵으로 점심 식사. [사진=윤영선]

'실크로드' 는 쭉 뻗어있는 '선(線)'의 길이 아니고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점선의 '오솔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오솔길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면 수시로 사라진다. 길을 찾기가 힘들고, 현지인 가이드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점심으로 투루판에서 구입한 '란' 빵을 길가에 차를 세우고 먹는다. 금방 구운 따뜻한 란 빵은 맛있는데, 식어서 기름기가 굳어진 란 빵은 맛이 없다.

실크로드 역사를 모르는 청년들에게 '실크로드(silk road, 비단길)' 뜻을 질문하면 "상인이 비단을 팔려 다니는 편안한 도로"라고 대답한다는 유머가 있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 이 1877년 이름을 붙였는데, '실크'라는 아름다운 명사를 붙였지만, 현실은 '비단길'과는 거리가 먼 험악하고 위험한 길임을 경험하고 있다.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종교, 무역, 전쟁, 질병이 이동하는 시간과 공간이 겹겹이 쌓인 역사의 길이다. 우리는 오늘 660킬로 긴 거리를 지나고 있다. 당초 계획은 '쿠얼러'에서 숙박하는 것인데, 이스탄불에 8월22일까지 도착해야 하므로 쿠얼러를 건너뛰고 강행군하고 있다.

중국 국경 세관에서 자동차 통과에 하루를 더 소비했기 때문에 하루를 보충해야 한다. 귀국 일정이 정해서 있어서 여행을 매일 쫓기듯 하는 것이 아쉬움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윤영선]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31> 실크로드 서역북로 '투루판'에서 '쿠차'로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