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기자]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이른바 '디젤게이트' 사태와 관련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약 153억 달러(17조9천억원)을 배상키로 합의했다.
폭스바겐과 미국 법무부, 환경보호청(EPA),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는 현지시간으로 28일 워싱턴에서 이같은 내용의 폭스바겐 최종 배상안을 공식 발표했다. 당초 예상 금액인 100억 달러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전체 배상액 중 100억 달러는 소비자 배상에 쓰이며, 배출가스를 조작한 2천㏄급 디젤차 소유주 47만5천명에게 차량 평가액에 따라 1인당 5천~1만 달러(약 600만~1천200만원)가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27억 달러는 환경 개선을 위한 비용, 20억 달러는 배출가스 저감 장치 등 친환경차 연구 비용 등에 쓰일 예정이다.
이처럼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배상책을 내놓았지만, 한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에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와 관련된 판매 차량은 전세계적으로 1천100만대에 이른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에 이어 유로6 및 휘발유차까지 배출가스 조작 의혹 범위가 확대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 소비자 배상책 無…"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필요"
이처럼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상책을 내놓았지만, 한국에서는 법적 규정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규모의 배상을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및 한국은 법적 규정이 다르기 때문에 (배상안 등 논의는) 별개로 진행되는 사안"이라며 "독일 등 유럽에서도 리콜만 진행되고 별도 보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는 환경부와 리콜 계획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 본사 역시 미국에서 발표된 최종 배상안이 폭스바겐의 '법적 책임'을 시인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폭스바겐 측은 "미국 내 차량 질소산화물 배출 규정은 다른 국가 규정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며, 엔진 변종 또한 상당히 다르다"면서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의 기술 해결책 개발은 이미 디젤차량에 대한 수리가 이미 시작된 유럽 및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어렵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개별입법 형식으로 3배 이내의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제한적으로 도입된 상태다.
국내에서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 하종선 변호사는 "우리나라 피해자들도 미국 피해자들과 같이 배출가스 허용 기준을 불법적으로 조작한 차량을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현금 배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이번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대기환경보전법 처벌 규정을 비롯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 역시 "미국의 징벌적 보상시스템이 아닌 이상 단순히 중고차 하락이나 정신적 피해 등은 국내에서 쉽게 보상받기 어렵다"면서 "한국은 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국식 징벌적 보상은 천문학적인 벌금과 보상으로 이어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철저한 책임을 기업에 추궁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면서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형 징벌적 보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은기자 eun0614@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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