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글은 종이에 기록하고 모습은 그림으로 담아내지만 소리는 발생하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에 잡아두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류 최초로 소리를 붙들어 기록한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인쇄업자 에두아르레옹 드 마르탱빌(Edouard-Leon de Martinville)이다.
책을 만지는 직업 덕분에 최신 과학기술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었던 마르탱빌은 '포노토그라프(phonautographe)'라는 발명품으로 1857년 3월 25일 프랑스 특허를 획득했다. 소리(phon)를 스스로(auto) 기록한다(graphe)는 뜻이다. 축음기, 즉 '소리를 저장하는 기계'가 등장한 것이다.
소리가 어떠한 떨림을 만들어내는지를 물질적으로 기록해 살펴보게 한 최초의 성과다.그러나 포노토그라프는 소리를 잡아두기만 할 뿐 다시 들어보지는 못한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솔 자국이 남은 검댕을 건드리면 원본이 훼손되기 때문에 그저 음파를 기록하는 용도로만 써야 했다. 녹음된 소리를 재생한다는 아이디어는 남프랑스 출신의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샤를르 크로(Charles Cros)가 떠올렸다.
크로는 검댕 대신에 금속판을 씌운 원통을 바늘로 긁어 기록하면 단단하게 새겨지기 때문에 재생을 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당시에 사진을 인화할 때 쓰던 에칭(etching) 방식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금속 원통의 표면에 산성 물질에도 부식되지 않도록 내산 코팅을 한다. 원통을 손으로 돌려 천천히 회전시키는 동안 외부의 음파에 의해 소리통 끝부분의 바늘이 떨리면 자국을 남기고 그 부위는 코팅이 벗겨진다. 원통을 꺼내 산성 용액에 담그면 바늘이 지나간 자리는 부식이 되면서 사진을 찍은 것처럼 굳어진다. 그 원통을 다시 소리통과 연결하면 굳어진 홈을 따라 바늘이 움직이면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다.
소리(phon)를 기록한다(graphe)는 의미로 ‘포노그라프(phonographe)’라 이름 붙여진 크로의 발명품은 1877년 10월 10일 작동원리와 제작방법을 설명한 논문이 발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크로는 딱딱한 이름보다 ‘팔레오폰(paleophone)’이라는 특이한 명칭을 선호했다. 과거(paleo)의 소리(phone)라는 뜻이다.
그러나 최초의 축음기를 발명한 것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발명왕 '에디슨'이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1877년 11월 21일, 세계 최초의 축음기 '포노그래프(phonographe)'를 발명했다고 공포했고, 29일에는 기계도 공개했다. 미국 특허를 획득한 것은 이듬해인 1878년 2월 18일이었다. 크로보다 늦었음에도 에디슨이 최초의 축음기 발명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크로는 소리를 저장했다가 재생하는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지만 작동원리만 제시했을 뿐,실제 기계를 완성하거나 설계도를 그린 적이 없었다. 모두를 위한 아이디어라며 특허권도 주장하지 않고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작동원리를 공개했다. 그가 떠올린 에칭 방식의 원통은 초창기 녹음 기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지만, 크로는 1888년 8월 9일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했다.
반면에 에디슨은 1877년 12월 완제품을 들고 인기 과학신문사 '사이언티픽 어메리컨(Scientific American)'로 찾아갔다. 기자들 앞에서 물건을 올려놓고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원통형 실린더를 돌렸다. 그러자 기계에서 에디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잘들 지내시나요? 포노그래프가 마음에 드십니까?(Good morning. How do you do? How do you like the phonograph?)"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온 소리가 기록되고 다시 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해서 '토킹 머신(talking machine)'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처럼 에디슨은 자신의 업적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수많은 발명품에 일일이 특허를 신청할 만큼 주도면밀했다. 덕분에 역사를 바꿔놓은 인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는 어떤 원리로 작동했을까. 혹시 크로가 남겨놓은 아이디어를 가로챈 것은 아닐까. 당시 에디슨의 설명을 들어보면 축음기 아이디어는 독자적으로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보가 주고받는 메시지를 기록하기 위해 에디슨은 회전하는 원반 기계 위에 둥근 모양의 종이를 깔고 철심을 연결했다. 철심은 전기신호에 따라 반응하는 전자석에 연결했다. 전선을 따라 전보가 들어오면 전자석이 움직이면서 종이에 자국을 남기는 식으로 메시지를 기록했다. 그 때 새로운 발상이 에디슨의 뇌리를 스쳤다. 이렇게 홈이 파인 종이를 다른 원반 기계에 올려놓고 회전시키면 메시지가 다시 재생되지 않을까? 이 장치를 전화기에 연결하면 사람의 목소리도 받아 적고 또 내보낼 수 있지 않을까?
전화기는 사람의 목소리에 따라서 떨리는 진동판이 전기신호를 만들면 반대편 전화기에서 그 신호를 받아 다시 진동판을 움직여 재생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에디슨은 진동판을 회전 원반 장치에 연결시켰다.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면 진동판이 떨리고 그 에너지를 이용해 원반을 회전시킬 수 있었다. 거꾸로 원반의 회전에 따라 진동판이 떨리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소리를 기록하고 다시 재생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에디슨은 원반 위에 종이를 까는 대신에 원통에 얇은 은박지를 둘러 사용했다. 진동판의 미묘한 떨림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원통이 회전하는 동안 소리통에 연결된 바늘이 은박지에 자국을 남기고 그 부분에 다시 바늘을 대면 녹음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계장치를 완성한 후 에디슨은 직접 소리를 내서 녹음 기능을 실험했다. 당시 동요로 널리 불리던 '메리는 어린 양이 있었죠(Mary had a little lamb)'였다. "메리는 어린 양이 있었죠. 양털은 눈처럼 하얬죠. 메리가 어디를 가든. 어린 양은 꼭 따라다녔죠." 유튜브에서 'edison'과 'phonograph'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127년 전의 목소리를 지금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에디슨은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흥미가 시들해졌다. 신기하고 재밌지만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86년 치체스터 벨(Chichester Bell)과 찰스 테인터(Charles Tainter)가 은박지 대신 밀랍을 씌운 원통을 사용한 ‘그라포폰(graphohone)’으로 새로운 특허를 받고, 1887년에는 에밀 베를리너(Emil Berliner)가 '그라모폰(gramophone)'을 출시하자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벨(Alexander G. Bell)도 1879년 '볼타 실험실(Volta Laboratory)'을 설립하고 연구를 거듭해 1886년 밀랍 방식의 축음기로 특허를 획득했다. 회의 기록용으로 축음기의 인기가 높아지자 에디슨은 다시금 축음기 개발에 뛰어들어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후 녹음 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LP'라 불리는 레코드판, 자기 방식으로 기록하는 카세트 테이프, 레이저로 인식하는 컴팩트 디스크(CD), 컴퓨터 파일로 저장하는 엠피쓰리(mp3) 포맷을 등장시켰다. 자연의 소리를 붙잡아두기 위해 수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이 노력했지만 에디슨은 새로운 발상과 기술을 이용해 꿈을 현실로 바꿔놓았다.
이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미국 과학자들이 마르탱빌의 원통에 새겨진 문양을 컴퓨터로 스캔해 실제 소리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피커에서는 1860년 녹음 당시 포노토그라프 앞에 서서 떨리는 마음으로 동요를 부르던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환한 달빛 아래 내 친구 피에로야(Au claire de la lune, mon ami Pierrot)…, 환한 달빛 아래 내 친구 피에로야…" 기계장치에 의해 최초로 녹음된 사람의 목소리는 이제 에디슨이 아닌 프랑스 꼬마로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 전화기의 최초 발명자는 현재 안토니오 무치로 인정되어 있다.
과학향기 2012년 2월 3일 자 칼럼 ‘최초의 전화 발명가는 벨이 아니다?’ 참고.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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