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2년째. 통신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불법보조금이 판을 치지만, 규제당국은 '단통법' 통과에 기댄 채 시장정상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4인가구 전체가 스마트폰을 가지는 시대가 되면서 가계통신비는 치솟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처는 미흡한 실정이다. 아이뉴스24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창간기획] 2014, 통신시장 혁신을 위한 5가지 조건'을 통해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한 통신시장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집중적으로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허준기자] '전국민무한 69', '완전무한 67', '음성무한자유 69'
이동통신3사의 주력 요금제인 이른바 '음성 무제한' 요금제들이다. 이들 요금제는 모두 무선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데이터 5GB 정도를 주는 요금제다. KT가 2천원 저렴한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요금제다.
다른 요금제도 마찬가지다. 흔히 52요금제, 62요금제, 55요금제, 65요금제 등으로 불리는 이동통신 요금제는 일정 수준의 무료 음성통화와 무료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동통신3사의 요금제 변별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때문에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휴대폰 요금제를 보고 통신사를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요금제가 어차피 비슷하니 휴대폰을 더 싸게 살 수 있도록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통신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통신 시장은 지난 1991년 이후 지배적사업자, 즉 SK텔레콤의 요금인가제도에 의해 요금제가 좌지우지됐다. 요금인가제는 당초 과도하게 요금을 인상하지 못하려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20년 넘는 세월이 지나오면서 '사실상의 요금담합'을 부추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요금제와 가계통신비 부담 및 이용자보호의 관계 등 제반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금제 제도개선 로드맵을 오는 6월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며 "(인가제 폐지 여부에 대해 검토는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요금인가제 폐지를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월 가계통신비 경감대책을 발표하며 요금인가제를 폐지해 요금인하 경쟁을 유도하고 인가제 폐지를 악용한 요금제 출시를 예방하기 위해 시정명령권 신설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동통신3사의 요금 경쟁을 위해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가제 폐지 수면 위로… 통신업계 무한경쟁 시대 열리나
요금인가제는 KT와 LG유플러스 등 후발사업자가 적절한 경쟁구조를 갖출때까지 사실상 지원해주기 위해 시행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동통신 시장의 5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SK텔레콤이 신규 요금제를 내놓을 경우 규제당국으로부터 사전 인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후발 사업자의 시장경쟁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통신업계는 사실상 요금제 경쟁을 하지 않았다. 선발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제를 인가받으면 후발주자들이 비슷한 요금제를 내놨다. 반대로 후발주자들이 요금제를 선보이면 SK텔레콤도 이 요금제를 따라갔다.
업계 관계자는 "요금인가제가 본래 취지와 달리 사업자간 요금제 추종 등 서비스 경쟁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선도사업자가 결정한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만 맞추면 되는데 굳이 혁신적인 요금제를 내놔서 자사 영업이익을 낮추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선도사업자가 요금인가제 때문에 혁신적인 요금제를 내놓지 못하면 후발사업자가 요금 혁신을 통해 가입자를 늘릴 궁리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인가제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선도사업자도 과감하게 혁신적인 요금제를 내놓을 수 있고 그러면 자연히 후발사업자들도 선도사업자와 비슷한 요금제로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궁극적으로 가계통신비가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가제 폐지 찬성 측의 주장이다.
특히 수년간 문제로 지적됐던 보조금 경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동안 혁신적인 서비스에 사용되야 할 비용이 보조금으로만 투입돼 요금 인하 여력이 부족했지만 인가제가 폐지되면 보조금 대신 요금인하를 통해 가입자를 확보할 사업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입비 폐지, 보조금 지급 금지 등을 통해 시장을 콘트롤하려고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완전경쟁이 이뤄져야 가계통신비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며 "정부가 경쟁을 통해 가계통신비를 낮추겠다며 알뜰폰 활성화, 제4이동통신 추진 등의 정책을 내놓으면서 요금인가제로 경쟁을 막고 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SKT에 날개달아주나…" 후발 사업자 '반발'
정부가 요금인가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후발 사업자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SK텔레콤이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가제를 폐지하면 SK텔레콤에게만 득이 될 뿐이라는 주장이다.
LG유플러스는 "후발사업자가 요금경쟁을 주도해야 시장경쟁이 활성화되고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동안 선도사업자가 나서서 요금을 인하한 사례는 없다. 후발사업자에서 음성 무제한 통화 등 혁신적인 요금제가 나왔다"고 반발한다.
KT 역시 "현재까지는 인가제 폐지와 관련해 미래부와 별도의 협의 등이 시행된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인가제 폐지가 SK텔레콤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후발사업자들도 지금처럼 요금인가제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많지만, 그렇다고해서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배적사업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인식인 것이다.
그러나 국회 미방위 전병헌 의원실은 "요금인가제는 처음 취지와 달리 후발사업자들이 선발사업자의 요금제에 교묘하게 올라타는 꼼수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며 "과거와 달리 지금은 KT와 LG유플러스가 경쟁을 하지 못하는 사업자가 아니라는 얘기"라는 지적에서도 보듯 인가제 폐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가고 있다.
◆폐지하더라도 대비책 있어야…
인가제의 폐지와 관련, 무조건 폐지하거나 유지하는 '양단선택'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통사들의 요금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인데, 이는 예전과 달리 인가제가 시장경쟁의 핵심 키워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요금인가제는 사실상 정부가 유일하게 통신요금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요금이 과도하게 비싸질 경우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인데 인가제를 포기하면 이통3사의 요금제 담합이 더욱 심해져 지금보다 요금이 더 올라갈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인가제를 폐지하더라도 기존 인가제 존치의 이유였던 '요금상한제도'를 두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가제를 폐지하면서 요금상한제를 같이 도입, 최소한의 요금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시각이다.
민주당이 제시한 시정명령권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인가제를 신고제로 바꾼 뒤 과도하게 시장질서를 뒤흔드는 요금제가 신고될 경우 시정명령을 통해 요금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아직 인가제를 폐지하겠다, 안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 아니다"라며 "6월말까지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실효성있는 요금제 개선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래부가 사실상 6월말까지 여론의 움직임을 토대로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득실에 따른 업계의 치열한 물밑작업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