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그 놈 참 성실하단 말이야.”
20년쯤 전 모 신문사 편집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면 담당 데스크에게 “기사 모자란다”고 했더니, 곧바로 통신사 단말기에서 기사 한 장을 찢어줬다. 그러면서 한 마디했다. “이 녀석은 그 때 그 때 바로 기사를 쏟아내누만. 게다가 땡땡이 치지도 않아. 기자 두 명 몫은 거뜬히 해내는 것 같아.”
IT 쪽에선 속보 경쟁도 많지 않았던 시절. 당연히 요즘처럼 뉴스 거리가 넘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특집이라도 맡게 되면 데스크들은 늘 기사 꼭지 확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적어도 편집기자인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편집국에 통신사 단말기를 들여놓은 게. 그 이후론 데스크들이 ‘원초적인 고민’에서 많이 해방됐던 기억이 있다.
요즘 기자들은 상상도 안 되는 전설 같은 얘기를 꺼낸 건 지난 주 발생한 로스엔젤레스(LA) 초대형 지진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 지진 발생 소식을 8분 만에 속보 처리한 LA타임스의 뛰어난 로봇 기자 때문이다.
디애틀랜틱(The Atlantic)을 비롯한 외신 보도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지진 발생" 메일 받은 지 1분만에 기사 작성 완료
LA지역에 지진이 강타한 것은 17일 오전 6시25분(미국 현지 시간). 약 2초 뒤 산타모니카 산악 지역에 설치돼 있던 미국 연방지질국(ISGS) 지진계가 처음으로 이 사실을 감지했다. 이 진동은 연이어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다.
그로부터 2분 뒤인 오전 6시27분. LA타임스 편집국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USGS가 규모 4.4에 이르는 지진 발생 사실을 통보하는 메일이었다.
LA타임스는 지난 2011년 일본 쓰나미 사태 이후 알고리즘을 개발해 놓은 상태. 크게 세 가지 질문을 준비해뒀다.
1. LA 지역에 2.5 이상 지진이 발생했는가
2. 캘리포니아 주에 3.0 이상 지진이 발생했는가
3. 미국 전역에 4.5 이상 지진이 발생했는가
세 번째 사항에 해당될 경우 로봇은 전국 면 편집자에게 바로 메일을 보내도록 돼 있었다. 반면 앞의 두 질문에 해당될 경우엔 LA 메트로 편집담당자에게 경고 메일을 발송하게 돼 있다.
로봇은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LA 메트로 면 담당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낸 뒤 곧바로 기사를 작성했다. 주요 팩트는 USGS가 보낸 메일에 포함돼 있었다. 다만 로봇은 지진의 진도에 따라 ‘강력한’ ‘미약한’ 같은 형용사를 알아서 선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로봇 기자가 담당 데스크에게 기사를 송고한 것은 이날 오전 6시28분. 지진이 발생한 지 3분, LA타임스에 메일이 도착한 지 불과 1분 만이었다.
로봇 기자의 경보 메일을 받은 담당 데스크가 기사를 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분 뒤인 6시 32분. 그리고 1분 뒤인 6시33분에 지진 발생 사실을 알리는 속보가 송고됐다.
이 소식을 전하는 애틀랜틱은 “로봇 기자의 기사는 특별한 데스킹 과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에선 ‘알고리즘 저널리즘’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대학농구 같은 일부 스포츠 종목에서 ‘로봇 기자’를 시험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실험에선 ‘사람 기자’가 쓴 기사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로봇이 '기자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있을까?
지난 주 후배들과 이 얘기를 하면서 “러다이트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주고 받았다. 물론 우스갯 소리였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는 뛰어난 저술에서 “아웃소싱 불가능한 일에 종사하라”고 권고했다. 그래야 평생 고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처음 프리드먼의 글을 읽을 땐 블로거를 비롯한 아마추어들이 저널리즘 영역에서 활약을 펼칠 무렵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활약을 경이롭게 지켜보면서 ‘기자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마추어들이 쏟아내는 ‘스트리트 저널리즘’ 만이 위협요인은 아닌 모양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 역시 가까운 장래에 기자들을 위협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 후배는 “로봇은 사람들을 취재해서 멘트를 딸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맞는 얘기다. 로봇 기자는 주어진 데이터만 처리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 기술 수준에선 그렇다.
그래서 기자들은 안심할 수 있는 걸까? 요즘 쏟아져나오는 수 많은 기사들 중 이 사람 저 사람 공을 들여 취재한 기사가 얼마나 될까, 란 질문을 던지게 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생산라인에서 한꺼번에 만들어낸 듯한 기사들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기자들은 참 피곤할 것 같다. 다른 언론사 기자나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뿐 아니라 이젠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일을 아웃소싱 당하지 않는 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뻔한 얘기지만, 그리고 조금 성가시긴 하겠지만 ‘자기 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알고리즘화된 로봇이 처리하기 힘든 기사. 누구나 쓸 수 있는 보도자료나 외신 기사 대신 전문적 식견과 기자적인 감각을 잘 결합한 기사. 이런 쪽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어느 날 ‘로봇 기자 러다이트 운동’을 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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