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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휘말린 e스포츠 '15년 여정'의 그늘


불법 베팅 유혹이 선수 자살 기도로 몰고 가

[이부연기자] e스포츠 선수 천모씨(22)의 자살 기도 이후 e스포츠 선수들이 처한 환경이나 처우 등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스타크래프트1' 리그로 불붙기 시작해 약 15여년간 명맥을 이어온 e스포츠는 최근 '리그오브레전드' 리그가 인기를 얻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e스포츠의 핵심인 선수들의 어린 나이와 짧은 수명, 은퇴 후 진로 등은 계속해서 문제로 제기돼왔다. e스포츠 선수들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는 과연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간이다.

한국e스포츠협회(Kespa)는 지난 17일 천씨가 주장한 승부조작에 대해 "감독 노모씨가 승부조작, 즉 대기업 팀에 일부러 져줘야 한다고 선수들을 협박한 것은 사실이나 경기내용 뿐 아니라 경기 당시 선수들의 음성채팅 분석내용에서도 고의 패배에 대한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노씨가 선수들에게 고의 패배를 강요했지만 선수들이 그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

현재 한국e스포츠협회는 노씨를 사기죄 및 업무방해, 강요 및 협박죄 등으로 고발한 상태다.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의 에이에이치큐(ahp)코리아 소속 선수였던 천씨는 지난 13일 감독이었던 노씨가 승부 조작을 종용했다고 알리며 자살을 시도했다. 12층에서 뛰어내린 천씨는 다행히 죽음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천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남긴 유서를 통해 노씨가 처음부터 승부조작을 위해 에이에이치큐코리아 팀을 창단했고, 대기업 팀과 경기 때 패배를 강요했으나 선수들이 따르지 않자 팀을 해체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2월 창단한 에이에이치큐코리아는 3개월 만에 해체됐다. 대만을 중심으로 e스포츠 구단을 운영 중인 에이에이치큐의 한국 부속팀 형태였던 이 곳은 '트레이스', '엑토신', '피미르' 등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의 네임드 고수 출신들을 대거 영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노씨가 이렇게 승부조작을 강요한 것은 불법 베팅 사이트를 통해 수익을 얻기 위함이었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불법으로 운영되는 베팅 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나 실명을 쓰지 않아도 가입이 되며, 베팅 액수에 제한이 없다. 최근에는 모바일 베팅도 가능해지면서 이용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스포츠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불법 베팅 사이트 이용자들의 주요한 타깃이 된다.

지난 2010년 스타크래프트1 리그 선수였던 마재윤은 동료 선수들에게 승부 조작을 직접 알선하고 돈을 건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e스포츠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e스포츠계는 이번 천씨 사건이 다시 인기가 되살아 나는 e스포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 승부조작 대가 100만~200만원, 이마저 아쉬운 선수 늘어

이번 사건은 노씨가 불온한 목적으로 팀을 창단하고 선수들을 협박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업계에 따르면 노씨는 사건이 일어난 지난해 22세의 나이로 선수들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실력 있는 선수들을 끌어모아 경기장에서 팀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구도 그가 승부조작을 강요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 2의 천씨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e스포츠 선수들은 나이가 어려 승부조작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며, 열악한 환경의 선수일 경우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 천씨 역시 부모님 없이 누나와 함께 살았으며 경제 상황도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e스포츠 구단 감독은 "승부조작에 가담하면 경기당 100~200만원 가량의 대가를 받게 되는데 이 정도의 월급도 받지 못하고 게임을 하는 아마추어 리그 선수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면서 "이들은 한국e스포츠협회 소속도 아니고 e스포츠 소양 교육 등을 받지 못해 위험에 더 자주 노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2~3년 사이 리그오브레전드 관련 여러 리그가 탄생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SK텔레콤과 CJ 등 대기업이 후원하는 프로 구단 이외에 많은 아마추어 구단들이 생겨났다. 아마추어 팀들도 게임만 잘 하면 글로벌 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 팀을 구성하는 비용도 월세, 식비 정도로 높지 않다는 점이 이유다.

선수들의 수명이 짧아졌다는 점도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가 늘어난 요인이다.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에서는 선수 수명이 상당히 짧아졌는데 스타크래프트1 리그 선수 생활 5년이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에서 1년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다.

2011년 본격화된 리그오브레전드 리그 선수 세계는 이현우, 정민성 등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위 '날고기던'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2세대로 접어든 상황이다.

한 e스포츠 구단 감독은 "수명이 짧아진 가장 큰 이유는 커뮤니티 등에서 선수를 신랄하게 평가하는 게이머들이 많아졌고 아프리TV 등 게임 생중계를 통해 실력이 적나라하게 평가받아 한 번만 실수해도 교체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게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견뎌낼 재간이 없으니 구단의 감독이나 코치 입장에서도 선수들을 오래 끌고 가기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e스포츠 구단 선수는 "리그오브레전드는 프로같은 아마추어가 많은 정도로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마추어 팀에서 프로를 꿈꾸며 월급도 받지 않고 뛰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부연기자 bo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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