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memorization)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외워 잊지 아니함'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영단어를 암기한다는 것은 영어 단어에 대한 정보를 두뇌의 어딘가에 기록해두는 일입니다.
무엇을? 영어 단어에 대한 정보를. 어디에? 두뇌의 어딘가에.
두 가지 포인트를 잘 따져보아야 효과적으로 영단어를 암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에 해당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어디에"에 해당하는 것, 두뇌에서 벌어지는 기억 메커니즘(mechanism)을 생각해봅시다.
효과적인 단어학습법을 찾기 위해 먼저 우리의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심리학에서 두뇌의 기억장치는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의 3가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기억이라는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대상을 시각과 청각을 통해 인지합니다. 감각기억(sensory memory)은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저장하는 장소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최소 7700만개 이상의 시감각 세포가 있는데, 초당 24개의 이미지를 인식합니다. 이런 이유로 영화의 프레임수가 초당 24컷입니다.
정지된 사진을 초당 24컷 이상 보여주면 인간은 끊어짐을 느끼지 못하고 연속된 동작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감각기억은 스틸 컷 사진을 계속적으로 찍어 대는 과정과 같습니다. 휘발성이 높아 금새 사라지기 때문에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감각기억에 있는 정보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면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단기기억도 5~9개 정도의 정보만 유지할 정도로 저장용량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감각기억보다는 우수하지만, 지속시간이 겨우 20초에 지나지 않는 매우 성능이 낮은 기억시스템이다. 단기 기억에 있는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옮겨내지 못하면 새로 입력되는 정보로 대체되어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단기기억에 있는 정보를 반복해서 학습하게 되면 장기기억(long-term memory)으로 옮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어를 외운다는 것은 결국 이 과정을 말하는데,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장기 기억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무한대에 가까운 기억용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장기기억으로 넘어간 정보는 대뇌(cerebrum)라는 영역에 비교적 영속적으로 저장됩니다.
대뇌는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추신경계의 중추로 운동, 감각, 언어, 기억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고등한 정신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대뇌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에는 RAM이란 기억장치가 있는데, 이것은 처리속도가 매우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원을 끄게 되면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는 영속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 CD-ROM이나 하드디스크와 같은 저장장치가 필요합니다.
단기기억은 두뇌 내에서 소위 말하는 해마(hippocampus)라는 곳에서 처리합니다. 해마는 측두엽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영역입니다.
해부학적인 생김새가 긴 꼬리를 가진 바닷물고기 해마(海馬)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해마에 저장된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다시 꺼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을 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 차곡차곡 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쓰기 위함입니다. 해마에 저장된 정보는 꺼낼 수 없습니다.
단순히 영어와 한글을 초당 수십 회씩 반복해서 보여주는 학습법은 원리적으로 감각기억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해마영역만을 이용해서 학습하는 방법도 장기기억이 불가능합니다.
언뜻 들으면 기가 막힌 학습법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외우고 나서 돌아서면 금새 무엇을 외웠지 하고 오히려 절망감을 안겨주게 됩니다. 인간의 고등한 사고능력을 활용하여 단어를 학습해야 언제든지 정보를 빼어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책을 읽는다든지 해서 문화를 습득하듯 단어의 개념을 쌓아가야 한다고 많은 언어학자들이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을 보다 효율적이고 본인에게 더 적합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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