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국내 전기차시장에서 업체별 신차 출시가 본격화되면서 업체마다 시장 전략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업체마다 시장 전망부터 판매 목표까지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국내 업체들의 경우 전기차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수입차업체들은 브랜드 파워 면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 자체 사업모델 개발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정부 지원이 관건"…현대·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전기차는 가솔린이나 디젤,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기존 자동차에 비해 유류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판매가격은 동급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에 비해 2배 가량 비싼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국내에서 대중화되지 않은 제품이어서 제조업체가 책정하는 것이 곧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경쟁이 본격화돼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 기술력이 더욱 발전해 생산 단가가 낮아지면 적정 가격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당분간은 일반 가솔린차량보다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산 완성차업체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앞세워 판매 확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내 유일한 준중형급 전기차인 르노삼성자동차의 SM3 Z.E는 판매가가 4천500만원으로 현재 나온 전기차 중에서는 가장 비싸다.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 구매하면 2천만원 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한국GM의 스파크EV도 판매가는 3천990만원이지만 보조금을 받으면 1700만원대까지 가격이 내려간다.
기아자동차 레이EV는 판매가를 4천500만에서 최근 3천500만원으로 낮췄다. 보조금을 받으면 최대 1천5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내년 4월께 선보일 준중형차 쏘울의 전기차 모델 쏘울EV' 가격은 3천800만원 내외로 책정될 전망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200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해진다.
유럽에서 3만4천950유로(약 5천148만원)에 판매중인 BMW의 i3는 국내 판매가격은 5천만원대 전후로 책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3천만원대 전후에 구매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처럼 전기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지원받아야 판매가보다 저렴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책정해놓은 전기차 보조금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환경부 구매보조금 예산은 올해 276억원에서 내년에는 254억원으로 7.9% 줄어든다. 전기차 1천여대만 지원할 수 있는 액수다. 2011년 573억원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실제 올해 제주도의 경우 도민 및 기업들로부터 총 487대의 전기차를 신청받았지만 구매보조금 예산이 바닥나면서 추첨을 통해 160대만 배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업체들은 연간 수천대를 판매하겠다는 현실과 거리가 먼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내년 완성차업체들이 제시하는 전기차 판매목표는 약 5천대에 달한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예산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지난 1일 SM3 Z.E.를 출시한 르노삼성은 올해 500대를 비롯해 내년에는 법인 2천700여대, 개인 1천300여대 등 총 4천여대를 판매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을 세웠다.
SM3 Z.E.는 출시 첫날 LG그룹이 200대를 한꺼번에 구매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미 법인고객 위주로 400여대 이상이 계약된 것으로 알려져 올해 판매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질 노만 르노그룹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부회장은 SM3 Z.E. 출시행사에서 "내년 4천대를 판매키로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한국 내 기업들이 신기술에 적극적인 경향이 있어 잠재력이 큰 데다 한국 소비자들 역시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혁신적인 기술과 연비효율, 관리 비용을 고민하고 있어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역시 한국 전기차 시장 1위를 목표로 내세웠다.
다만 르노삼성은 전기차 보급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내년도 판매목표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질 노만 부회장은 "전기차는 아직 규모의 경제까지는 달성하진 못했다"면서 "한국 정부가 인센티브와 보조금 혜택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가 시장에 확산될 때까지 최소 5년 동안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며 "기술이 더 개발돼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는 인센티브가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쉐보레 스파크EV를 선보인 한국GM은 내년에 1천대가량을 내수시장에서 판매한다는 목표다.
올해 남은 기간 최대 400대, 내년에도 최대 2천400대를 창원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수출물량까지 포함한 숫자다.
스파크EV는 지난달까지 창원시 15대, 인천시 2대, 민간사업자 21대 등 총 38대가 국내에서 판매됐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전기차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점진적으로 보급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기아차는 일단 정부 정책 변화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내년 4월 쏘울EV 출시 전까지는 좀 더 시장상황을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결국 업체들마다 전략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전기차 대중화의 성패가 결국 정부 결정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정부와 지자체에 매달리는 이유는 높은 가격대로 인해 일반 소비자를 공략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비싼 가격 때문에 아직까지 일반 소비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국내 전기차 시장의 확대는 결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예산이 얼마만큼 확보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업체들의 목표는 이뤄지기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부족한 충전 인프라도 걸림돌이다. 지난 9월말 현재 설치된 전기차 급속충전시설은 서울 29곳, 제주 22곳, 경남 10곳, 충남 10곳 등 전국을 통털어 117곳에 불과하다.
국산완성차 업계는 충전인프라 사업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동차 만드는 회사에게 주유소까지 하라는 얘기'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BMW "자체적으로 전기차 사업 나설 것"
반면 내수시장 수입차 1위업체인 BMW코리아의 경우 정부가 전기차 관련예산을 줄이고 있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기차 시장에서 정부 지원금과 인프라 확충에만 기대지 않고, 국내 업체와 협력해 직접 인프라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은 "BMW는 전기차 시장 및 인프라 활성화를 위해 국내 기업들과 적극 협력할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국내 전기차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정부 투자와 보조금에 의존하지 말고 제조업체가 공공부문에서 하루빨리 민간부문으로 보급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BMW코리아는 연내 대형마트 및 유명 레스토랑 체인업체들과 협력해 자체 충전시설을 마련하는 한편, 전기차 구매고객을 위한 멤버십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BMW의 이 같은 자신감은 i3에 대한 품질력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i3는 국내 업체들의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모델을 개조해 제작된 것과 달리, 개발 단계부터 순수 전기차에 최적화된 설계로 탄생한 모델이다.
높은 가격대 역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BMW의 i3는 국내 판매가격이 5천만원대 전후로 예상되지만 정부 및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3천만원대 전후에 구매가 가능하다.
정부 보조금을 감안할 경우 기아자동차의 레이EV는 1천500만원대, 쏘울EV는 2천만원대, 한국GM 스파크 EV가 1천700만원대, 르노삼성 SM3 Z.E가 2천만원대 수준이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전기차와 비교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브랜드 프리미엄과 성능 등을 감안할 경우 가격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BMW의 준중형 라인업인 3시리즈 가격은 최저 4천390만원이고, 가장 싼 소형차인 1시리즈 해치백도 3천360만원에 달한다. i3의 가격은 결국 기존 BMW의 내연기관 모델 가격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저렴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경우 기존 가솔린 모델보다 전기차 모델 가격이 상당폭 비싼 것과 대조된다. BMW가 국내 업체들보다 브랜드 측면에서 앞선 현실을 고려하면 보조금 없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i3는 기존 BMW 차량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델"이라며 "국내 시장에서 BMW가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하면 i3 가격은 소비자가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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