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기자] 한국에 보드게임방 열풍이 일었던 시기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보드게임방이 알려지면서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위주로 보드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다. 당시에 유명했던 '젠가'나 '할리갈리' 같은 보드게임 덕분에 보드게임은 비교적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2004년을 기점으로 보드게임방은 사라진다. 보드게임방이 PC방 같은 비슷한 업종보다 인건비가 많이 필요했다. 보드게임 특성상 게임의 룰을 설명해주는 직원들이 많이 필요했다. 보드게임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한때 1천개가 넘었던 보드게임방이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보드게임 산업이 침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드게임방이 사라지면서 보드게임을 공급하는 회사들에게는 숨통이 트였다. 보드게임방이 없어지면서 보드게임을 즐기려는 이용자들은 반드시 게임을 구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디지털기기에 매몰된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보드게임을 찾고 있다. 할리갈리나 젠가 등 잘 알려진 게임들은 모두 외국 보드게임이지만 최근에는 국산 보드게임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준원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장은 젬블로라는 보드게임으로 국산 보드게임 첫 해외 수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지난 2008년 첫 수출된 이 게임은 현재 북미,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 각지에서 유력 보드게임 퍼블리셔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보드게임산업협회는 젬블로를 개발한 오준원 협회장을 필두로 생각투자 주식회사, 코리아보드게임즈, 조엔, 행복한 바오밥, 놀이속의 세상, 매직빈, 우보씨앤씨, 몬스터게임아시아, 에듀카코리아, 보드엠 등 국내 보드게임 회사들이 모여 보드게임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한 단체다.
오준원 협회장은 보드게임이 PC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처럼 규모가 큰 산업은 아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부모와 자녀의 소통이 보드게임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보드게임은 기본적으로 2명 이상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즐겨야 하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할 수 있죠. PC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은 혼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드게임이 가족의 소통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게임과몰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드게임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학습의 효과를 담아낼 수도 있다. 산수를 배울 수 있는 생각투자주식회사의 '메이크텐', 구구단을 가르쳐주는 행복한 바오밥의 '셈셈테니스', 조엔의 수학 보드게임 '아레나써클' 등 교육적인 효과를 주는 게임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보드게임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족용게임과 교육용게임, 그리고 게이머게임이죠. 교육효과는 당연히 교육용게임이 좋지만 가족용게임과 게이머게임도 유소년층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드게임은 집중력이나 공간지각능력, 참을성 등을 길러주기 때문에 진정한 '착한게임'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면이 많은 '착한게임'이지만 보드게임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게임에 관한 법률인 게임산업진흥법에 보드게임이 게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준원 협회장은 수년전부터 게임의 정의에 보드게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게임산업진흥법에 보드게임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
게다가 고스톱, 포커 위주로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 회사들이 이런 게임들을 통칭 '웹보드게임'이라고 부르면서 진짜 보드게임들이 피해를 입었다. 고스톱, 포커류게임의 사행화가 심해지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웹보드게임 규제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웹보드게임은 보드게임이 아니죠. 다른 말로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게임들을 웹보드게임이라고 하니까 진짜 보드게임에도 사행적인 요소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불법보드게임방에서 도박을 하다가 적발되면 또 보드게임방이 나쁘다는 인식이 생기죠. 이래저래 보드게임 회사들의 한숨만 들어납니다."
오준원 협회장은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보드게임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보드게임협회는 게임쇼 지스타를 비롯해 기능성게임 페스티벌, 캐릭터 페어 등 다양한 박람회에 참여해 보드게임을 전시하고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올해도 15개 이상의 박람회에 참여해 보드게임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보드게임의 힘은 이런 박람회를 직접 가보면 느낄 수 있다. 어느 박람회든 보드게임이 전시되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찾아와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지스타 2012에 참여했을때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였다.
"박람회 같은 곳에서 보드게임을 전시하면 정말 많은 분들이 체험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구매하는 분들도 많죠. 구매자의 80%는 어머니들입니다. 직접 해보니까 자녀에게도 좋겠다는 느낌을 받고 구매하시는 것이죠. 직접 해보시면 보드게임의 참 재미와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준원 협회장은 보드게임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보드게임 지도자자격증 강좌도 주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이미 700여명이 이 자격증을 따고 각지에서 보드게임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주로 초등하교 방과후 학교 교사, 학습지 선생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 등이 이 자격증을 딴다.
"보드게임방이 사라지면서 보드게임의 유행이 지났다는 오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문화, 아이들의 교육 등 건전한 게임문화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매년 50~60% 씩 성장하고 있는 산업입니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보드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우수한 보드게임들을 많이 개발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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