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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꿈의 신소재 그래핀, 2010 노벨상 거머쥐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은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바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꿈의 신소재 '그래핀(graphen)'이다.

그래핀은 탄소 나노소재로,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의 육각 구조를 이루면서 한 층으로 펼쳐져 있다. 사실 탄소 나노소재에는 공 모양의 풀러렌(fullerene)과 둥근 기둥 모양의 탄소나노튜브가 더 있다.

이렇게 탄소 나노소재에는 삼형제가 있다.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순으로 엄연히 서열도 존재한다. 풀러렌이 1985년, 탄소나노튜브가 1991년, 그리고 그래핀이 10살도 넘는 터울을 지고 2004년에 태어났다.

그래핀은 탄소 삼형제 중 막내이긴 하지만 '형보다 나은 아우'다.

그래핀이 등장하기 전까지 둘째형 탄소나노튜브는 정말 잘 나갔다. 한때 '꿈의 신소재' 하면 탄소나노튜브만 떠들어댔을 정도.

그래서 나노과학에 관심을 좀 가진 사람들이라면 탄소나노튜브를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탄소나노튜브의 기세를 꺾고 현재는 그래핀이 최고로 각광 받는 꿈의 신소재가 됐다.

그렇다면 그래핀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주목받는 것일까.

우선 전기적인 특성을 보자면, 그래핀은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나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빛이 98%나 통과될 정도로 투명하기까지 하다. 열전도성도 탁월해 구리보다 10배나 더 열을 잘 전달한다. 강도는 강철보다도 100배 이상 강하다.

또한 자기 면적의 20%까지 늘어날 정도로 신축성도 좋다. 게다가 완전히 접어도 전기전도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소재로서 어디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그래핀은 그 자체만으로도 쓰임새가 다양하다. 반도체 트랜지스터부터 투명하면서도 구부러지는 터치스크린, 태양전지판까지 앞으로 각종 전자장치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그래핀이 플라스틱과 만나면 플라스틱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에 1%의 그래핀만 섞어도 전기가 잘 통하게 된다. 또한 플라스틱에 고작 0.1%의 그래핀을 집어넣으면 열에 대한 저항이 30%나 늘어난다.

그러니 얇으면서도 잘 휘어지고 가볍기까지 한 새로운 초강력 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 많은 그래핀에 과학자들이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핀에 노벨상이 수여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우보다 못한 맏형 풀러렌이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둘째형 탄소나노튜브는 해마다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곤 했으니 말이다.

2010년 올해 그래핀으로 노벨상을 받은 영예의 주인공은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다.

흥미롭게도 이 두 물리학자가 그래핀을 얻어낸 방법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기발했다. 신소재 개발의 도구라고 하기에 무색한 '스카치테이프'가 동원된 것이다.

사실 그래핀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1947년에 최초로 연구되었다. 연필심으로 쓰이는 흔한 물질인 흑연은 그래핀 여러 장이 켜켜이 쌓여있는 구조다.

이런 탄소 층상구조 덕분에 연필은 우리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잘 떨어져나가며 글씨가 잘 써진다.

하지만 흑연에서 단지 한 장의 그래핀만을 얻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최첨단 나노기술까지 활용했지만 이번 노벨상 수상의 두 주인공이 나서기 전까지는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핀 분야에 노벨상이 수여된다면 한국 최초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던 미 컬럼비아 대학의 김필립 교수도 10장 정도까지밖에 분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4년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교수는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이 일을 해냈다.

흑연에 붙였다 떼어낸 스카치테이프를 10~20번 정도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더니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그토록 애써 얻으려고 했던 그래핀이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그것도 상온에서 말이다.

게다가 그래핀은 고작 원자 한 층으로 되어 있어 쉽게 부서지고 말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매우 안정적이기까지 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얻은 그래핀은 고작 마이크로미터(1㎛= 1m의 100만분의 1m) 크기에 불과했다. 이 작은 그래핀으로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여러 과학자들이 그래핀의 우수한 특성들을 조금씩 밝혀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놀랍고 신비로운 특성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그래핀에서 전자는 빛처럼 행세한다. 빛이 진공에서 초당 30만 km라는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듯, 전자는 그래핀에서 초당 1,000km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그래핀에서 특이한 터널링 현상을 보인다. 터널링 현상은 입자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으로 양자세계에서만 나타난다.

터널링 현상은 벽의 높이가 높을수록 적게 나타는데, 그래핀에서의 전자는 이런 벽도 허물어버린다. 마치 벽이 가로막고 있지 않은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그래핀이 기묘한 양자세계에 속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들인 풀러렌과 탄소나노튜브가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소재로서 우수하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기대를 모았던 김필립 교수가 빠진 건 너무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그래핀 응용 면에서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은 위안을 삼을 만하다. 실제로 그래핀 상용화 '세계 전쟁'에 불을 붙인 곳은 우리나라다.

홍병희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가 그래핀으로 가로세로 약 2cm의 휘어지는 투명필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2009년 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 연구는 '신축성이 좋아 늘리거나 접어도 전기전도성을 잃지 않는다'는 그래핀의 특성을 눈으로 확인시켜 준 첫 사례였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퍼듀대 등이 앞다퉈 그래핀으로 투명필름, 트랜지스터 등을 만들면서 상용화 연구에 속도를 더했다.

게다가 2010년 6월에는 홍 교수 연구팀이 그래핀으로 30인치 크기의 터치스크린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마이크로 크기만 했던 그래핀이 이제 무려 70cm 정도까지 커진 것이다.

앞으로 그래핀이 우리의 미래생활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기대가 된다.

/글 박미용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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