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정일 기자]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방송통신 융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로 시작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목적은 이렇게 이어진다.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와 방송통신 분야 이용자 편익 증진, 방송·통신의 균형발전과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다.’(방송통신위원회 홈페이지)
불명예 퇴진을 했지만 최시중 초대 방통위원장도 취임사에서 ‘방송통신 융합’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고 보면 ‘방통 융합’은 방통위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해 2008년 3월26일 출범한 지 어느덧 16년. 과연 방통위는 방통 융합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란스러웠던 방통위가 또 다시 정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아들 학폭 무마 의혹’ ‘MB(이명박) 시절 방송 장악 시도’ 등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를 둘러싼 잡음에 KBS 수신료 분리 징수, KBS‧MBC 이사진 교체까지. ‘방송 장악’이니 ‘방송 정상화’니 여야가 사생결단 중이다.
방통위 위원들의 임기가 꼬인 탓도 있다. 현재 방통위는 김효재 상임위원(여당 추천), 이상인 위원(대통령 추천), 김현 위원(야당 추천) 3인 체제다. 김 상임위원과 김 위원은 이달 23일 임기가 끝난다. 야당 추천 최민희 전 의원은 대통령 임명이 미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자가 임명되면 방통위는 정부 여당측 2인 체제가 된다. 방통위설치법에 따르면 재적 위원 과반수 참석으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어 2인 체제에서도 의결이 가능하다.
야당은 법을 개정해서라도 방통위 의결 정족수를 ‘3인 이상’으로 명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런 야당을 향해 여당은 '방통위를 식물부처로 만들겠다는 법'이라며 비난하고, 야당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방통위’라고 맞받아친다.
오는 18일 청문회가 분수령이다. 이 후보자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해명하겠다지만 야당이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이 후보자야말로 방송 정상화의 적임자다. 야당 입장에서는 방송 장악의 당사자다. 이 후보자를 바라보는 저 간극만큼이나 여야 갈등의 골도 깊다. 그 정쟁의 블랙홀이 방통위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쯤되면 ‘방송통신 융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거나 ‘방송통신 분야 이용자 편익 증진’이라는 설립목적이 무색해진다. 오죽하면 ‘방통위’가 아니라 ‘방송위’라는 쓴소리가 나오겠는가. 이럴 바엔 방송 진흥과 통신 정책을 떼어내고 방송 규제만 남기자는 의견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방통위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올해 4대 과제에는 방송만 있는 게 아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유해 매체에 대한 규제도 현실화해야 한다.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네이버 카카오 포털이 운영 중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법제화 추진 역시 점검하고 따져봐야 할 게 많다.
할 일이 태산이다. 방통 융합의 갈 길은 멀다. 방통위가 언제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이정일 기자(jay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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