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류은혁 기자]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담긴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을 두고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코스닥 상장사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에선 중소·중견기업의 경영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관련해 코스닥협회는 "리스크 대응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이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면서 "상법개정안에 따른 부작용 방지를 위한 재정비가 우선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스닥협회 "다중대표소송제, 대기업부터 우선 적용"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협회는 전날 '상법 개정안 주요 이슈 설명회'를 열고 지난 8월25일 국무회의에서 원안이 확정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 마지막 단계인 국회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줄 것을 건의하고 나섰다.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일명 '3% 룰')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의 선택적 적용 명문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중대표소송 제도가 도입되면 자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모회사의 주주도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법제팀장은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 취지는 이해가 되지만 중소·중견기업이 몰려있는 코스닥 상장사에 대해선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 "다중대표소송은 우선적으로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의 대기업 또는 100% 자회사에 한정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진 법제팀장은 "소송대응 여력이 있는 기업들에게 우선 적용해 추이를 지켜본 뒤 중소·중견기업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주요 선진국의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남용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엄격한 전제요건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는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하지 않는 데다 일본과 비교해도 기준이 과하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경우 상장사 지분 1%를 가져야 자회사에 소송을 걸 수 있으며, 모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고, 자회사 주식의 장부가액이 모회사 자산액의 20%를 초과하는 자회사에만 소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자회사는 모회사가 주식을 보유한 회사를 의미한다. 상법에는 모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가진 회사를 자회사로 본다.
나아가 국내 상법에서 규정하는 자회사 범위는 광범위하다. 자회사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 342조의2 3항에 따르면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주식을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는 이 법의 적용에 있어 그 모회사의 자회사로 본다'고 돼 있다. 이는 자회사의 자회사, 즉 손자회사까지 자회사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진 법제팀장은 "부당한 경영간섭이나 단기차익 실현 목적의 투기자본 등에 의한 기업압박 수단으로 악용·남용될 우려가 있다"면서 "다중대표소송이 도입되면 소송리스크가 늘어남에 따라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대응능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의 경영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을 통해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 방지 등 모회사 소수주주의 경영감독권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무부 측은 현재 상법은 대기업 총수가 장악한 자회사의 불법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볼 경우 일반 주주가 사측에 책임을 물을 마땅한 법적 수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비상장회사 주식 전체의 100분의 1, 상장회사는 1만분의 1을 보유한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코스닥협회 측은 소송리스크 증가에 따른 경영권 방어 비용 증대로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R&D) 및 인재고용 여력 약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우선 시가총액이 상대적으로 낮은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소송리스크가 더욱 증가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진 법제팀장은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기업규모가 중소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면서 "통상 중소기업 수준의 상장사를 살펴볼 경우 전체 인원 300명 중 290명이 생산직인 반면 관리직은 10명인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회사가 소송에 노출되면 일정한 위험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꺼리게 되거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제약받게 될 우려가 있다"며 "소규모 상장사가 소송까지 감당하기에는 경영활동에 대한 리스크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감사위원 독립성 강화" vs "투기자본 경영권 위협"
감사위원 분리선출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법무부와 코스닥업계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법무부는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선출은 대주주의 입김으로부터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취지라는 입장인 반면 반대 측에선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란 이사회를 구성할 때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와 다른 이사를 처음부터 따로 나눠 선출하자는 제도다. 이때 감사위원 선출에 대주주의 의결권은 처음부터 3%로 제한되면서 일반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경영을 우선순위에 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현행법상 감사위원 선임은 이사회를 통해서 걸러진 이사를 통해서 다시 3%룰을 통해 선임되는데, 이는 대주주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발언권이 없었던 일반투자자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성훈 법제팀장은 "경쟁업체 등 외부 투기세력을 대변하는 이사가 감사위원에 선임되면 기술유출은 물론 기업경영에 중대한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면서 "투기자본이 지분분할 후 연합으로 대주주보다 높은 의결권을 갖게 되면 이사회에 진출해 기업 기밀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현재 코스닥시장에서 자산총액이 1천억원 미만의 상장사는 661개사, 1천억원 이상 3천억원 미만의 상장사는 509개사다"면서 "이번 상법개정안에 따른 대응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재정비된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류은혁 기자 ehryu@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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