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를 두고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같은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은행 최고경영자의 중징계를 두고 언론과 시장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소비자 보호'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선 강력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키코' 사태를 재조명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는 잘 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은행들이 '배임 가능성'을 이유로 배상을 주저하고 있지만, '고객을 지원하는 게 곧 주주가치 제고'인 만큼 배임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7일 출입기자단과의 취임 2주년 기념 티타임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원장은 다음 달 8일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최대 고비는 DLF 제재…"제재심 비판 합리적이지 않아"
윤 원장이 꼽은 임기 2년 중 최대 고비는 지난해 DLF 사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DLF 사태' 이후 문제가 된 두 은행 CEO의 징계 결정 과정이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올해 초 두 CEO에게 내부통제 미흡을 이유로 '문책경고'를 내리기로 심의했고, 윤 원장은 해당 보고서를 결재했다. 임원 제재는 금감원장 전결사항이다.
당시 중징계를 두고 언론과 시장에서 과도한 조치라고 비판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는 게 윤 원장의 입장이다.
그는 "가장 큰 고비는 DLF 사태 이후였다"라면서도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시계를 몇 달 돌려도 내 의사결정은 똑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DLF란 해외 주요국 금리·환율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상품을 말한다. 지난 해 9월부터 해외 주요국의 금리가 급락함에 따라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는데, 그중엔 사실상 원금 전부를 잃은 투자자들도 있었다.
당시 비판의 논지는 '검사권한을 쥔 금감원이 제재까지 한다'라는 것이었다. 구형을 하는 검사가 판결까지 하니 공정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제재심 자체에 문제는 없으며, 최고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낸 만큼 심의 결과를 지적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은 비판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주어진 제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결정하는 것이었지, 주어진 틀을 바꾸는 건 결코 아니었다"라며 "금융감독의 책임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과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감원 내부에서도 검사와 제재 부서를 따로 두고 있으며, 수석부원장을 빼면 모두 전문성있는 외부 사람이다"라며 "제재심의위원회 결과가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까지 올라갔는데 거기서도 큰 흐름은 모두 인정이 된 만큼, 그걸 가지고 그렇게 비판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소통에서의 아쉬운 점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최근 금융환경을 보면 소비자들은 나름대로 고수익을 원하고 그것을 금융회사들이 동조하면서 고위험-고수익 추구가 알게 모르게 퍼져있었다"라며 "고위험 고수익을 원할 수는 있지만 일반화되는 건 곤란하니, 금융회사들에게 메시지는 줘야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원은 제도적인 절차에 따라 정리를 했는데 밖에선 너무 과중한 벌을 줬다고 읽은 것 같다"라며 "제재가 기관과 개인을 미워해서 하는 게 아니라, 중대한 일이 벌어졌으니 재발 방지를 위해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 잘 되는 게 곧 주주가치 제고…배임 가능성 의문"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는 '키코'다. 키코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을 말한다. 미리 정해둔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선 이상 환율이 오르거나, 하한선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손실을 입게 된다.
키코에 가입한 수출 중소기업들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환율 급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바 있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키코로 인한 기업들의 손실 규모는 3조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피해 기업들은 판매 은행들이 불공정 행위 등으로 상품을 팔았다며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 계약이 불공정 행위 등으로 무효라거나 사기나 착오로 인한 계약이어서 취소할 수 있다는 기업 측 주장은 모두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결론을 냈다.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종결된 것과 다름없었던 키코 사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배경엔 윤석 원장의 '의지'가 있었다. 윤 원장은 2018년 금감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재조사를 지시했다. 이어 키코 분쟁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열고 "상품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라며 6개 시중은행에게 손실을 본 4개 기업에 대해 최대 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금융감독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을 한 은행은 1곳에 불과했다. 2곳은 거절했으며 3곳은 지난달 금감원에 네 번째 검토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결국 배임 우려 때문에 배상을 주저한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난항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코 문제를 다시 화두로 꺼낸 건 옳았다는 게 윤 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키코 때문에 많이 시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는 잘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특히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제기하는 '배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고객을 지원하는 게 어떻게 '주주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냐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서 금감원이 지원하는 게 적절하다는 권고를 따르는 게 과연 주주가치에 반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라며 "고객이 잘 되는 것이 곧 주주가치 제고다"라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 권고를 따를 때 플러스 마이너스를 이사회에서 따져서 판단을 하면 되는데, 경영 판단도 없이 배임으로 치부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은행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인터뷰에서 윤 원장은 "직접 만나서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라며 아쉬움을 강하게 표했다. 그는 "희망하기로는 은행들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우리나라 금융이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며 "산업은행은 안 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나름대로 보고 여기까지 판을 만들었는데 은행이 좀 더 긍정적으로 봐줄 소지는 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심각하지만, 한국 금융상황 '괜찮다'
한편 윤 원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금융 상황은 '괜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와 한국은행에서 여러 지원을 약속한 덕이 분명히 있다"라며 "금감원 나름대로 금융상황 현황을 체크하는데, 편하게 말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CP나 회사채, 여전채 시장에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체계적인 위험으로 번지지 않으면서 수그러 들고 있다"라며 "전체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은행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은행권이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장기화 될수록 '복원력'도 보여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이 문제가 길어지면 은행권의 역량이 중요해진다"라며 "지금은 소방수 역할을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 될수록 은행권의 자금력 등 복원력이 중요해지는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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