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그의 머리,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과 유머 감각을 좋아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희화화 하지만, 절대 심각해지지는 않습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 감독의 '기생충'이 감독상과 작품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에 오르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무대에 올라 이 같이 소감을 밝혔다. 이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직접 소감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웃음을 띄며 "기생충을 지원하고, 함께 일해 왔던 제작진과 영화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특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꿈을 지원해 준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영화를 지지해주고 솔직한 의견을 표현해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영화 관람객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만족스러울 때까지 영화를 만들게끔 영화 제작자들에게 끊임없이 힘을 실어주고 있는 한국 영화 관객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이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 '기생충' 제작진들과 동생 이재현 CJ그룹 회장,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습은 그 동안 보여줬던 행보와는 사뭇 달랐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 영화 '광해' 등을 제작한 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에 퇴진 압박을 받았으며,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에 머물며 공식 활동을 자제해 왔다.
대신 이재현 회장 뒤에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CJ그룹의 문화 산업을 지원 사격해 왔다. 이 부회장은 그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신규 회원으로 위촉되는 등 해외 영화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인맥 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을 기점으로 이 부회장의 공식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은둔형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서서히 벗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칸 국제 영화제'에 '기생충'이 경쟁 부문에 진출하자 10년 만에 칸을 찾아 주목 받았다. 이 부회장은 10년 전에도 봉 감독의 영화 '마더'로 칸을 방문한 바 있다. 이후에도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할 때 제작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과 함께 수 년간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던 인물로, 지난 2009년 봉 감독의 영화 '마더'에 투자한 후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지속 투자하며 한국 영화 발전을 견인해 왔다.
특히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인 삼성아메리카의 이사로 재직할 당시 이 회장과 함께 스티븐 스필버그가 창립한 영화사 '드림웍스'와 계약을 맺었던 일화는 재계에서도 아주 유명하다.
당시 CJ그룹은 3억 달러를 투자해 일본을 제외한 드림웍스의 아시아 배급권을 따내 영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 때 이재현 회장은 "영화 투자·제작을 근간으로 극장, 콘텐츠 투자, 방송사 등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이후 이 회장은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영화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투자 금액은 CJ제일제당 연간 매출의 20%가 넘는 3억불(약 3천300억 원)으로, 경영진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문화가 우리의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투자를 강행했으며, 결국 CJ는 IMF 시기인 1998년 4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을 오픈해 영화산업의 일대 전환기를 불러왔다. 또 지금까지 칸 영화제에만 총 10편의 영화를 진출시켰으며, 봉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총 4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CJ그룹 관계자는 "'기생충'을 만들기 위한 모든 투자 결정은 이재현 회장이, 전반적인 운영·관리는 이미경 부회장이 나선 덕분에 이 같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기생충'이 국내에선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는 웰메이드 작품으로 평가 받았고, 전 세계에도 역대 한국영화 최다 해외 판매 기록을 수립하며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든든한 지원 덕에 봉 감독의 '기생충'은 101년 한국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 역사를 새롭게 쓴 대기록를 남겼다.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깨고 4관왕을 차지하며 오스카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또 '기생충'은 지난해 칸 국제 영화제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작품 등 총 21편의 경쟁작을 제치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페드로 알도바르 감독,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과 경합을 벌였지만, 봉 감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봉 감독은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며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니지만,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오등분 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며 "오늘 밤은 내일 아침까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고 재치있게 수상 소감을 밝혀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이 같은 수상 소식에 이재현 회장도 영화 '기생충'을 두고 한국 영화의 위상과 국격을 높인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봉 감독을 치켜세웠다.
이 회장은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선대(이병철) 회장의 철학에 따라 국격을 높이기 위해 20여년간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 산업에 투자했다"며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끼와 열정을 믿고 선택했던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생충'과 같이 최고로 잘 만들면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며 "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 독보적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해 전 세계인이 일상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게 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밝히며 문화 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최근 '우상', '기생충' 등 영화 제작투자에 적극 나서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만큼, 그 동안 침체됐던 CJ의 영화 사업도 다시 탄력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영화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덕분에 한국 영화 산업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CJ그룹은 1995년부터 320편이 넘는 한국 영화를 꾸준히 투자·배급하며 국제영화제 진출 및 수상으로 한국영화를 세계시장에 알리는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 동안 문화 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만 따져도 7조5천억 원이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영화 '기생충'의 수상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인 국가적인 경사로, 한국 영화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의미"라며 "CJ는 지난 20년간 다양한 장르, 신선한 소재의 한국영화에 꾸준히 투자하고 멀티플렉스 등 산업인프라를 구축해 한국영화 산업의 질적, 양적 성장에 기여해 왔다"고 평가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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