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립된 지 6년 밖에 되지 않은 가구 회사에 입사한 한 청년. 그는 40년 후 그 회사를 국내 최대의 인테리어·가구 회사로 성장시켰다. 바로 최양하(70) 한샘 회장 얘기다.
최 회장은 한샘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31일 밝혔다. 지난 1979년 대우중공업을 퇴사하고 세워진 지 6년 된 한샘에 입사한 지 40년 만이다. 그는 재직 기간 동안 한샘의 매출을 약 15배, 영업이익을 약 14배, 시가총액을 50배 성장시켰으며, 그 동안 한샘은 매출 2조의 글로벌 종합 인테리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평사원 입사 후 15년 만에 대표 올라…시가총액 50배 성장시킨 '샐러리맨 신화'
최 회장은 1949년 출생 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을 거쳐 지난 1979년 한샘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영업과 생산 등 현장 경험을 두루 거치고, 1994년 45세의 나이로 대표이사에 선임돼 25년간 '장수 CEO'로 일했다.
그는 입사 후 7년만인 1986년 한샘의 부엌가구 부문을 업계 1위로 올려놓았으며, 가구 인테리어 부문은 1997년 사업 개시 후 3년 만인 2000년 1위로 끌어올렸다. 또 2009년 업계 최초로 5천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2013년에는 1조 원의 벽도 뛰어넘은데 이어 2017년에는 기어이 2조 원 매출을 기록하며 가구 업계의 '역사'를 썼다.
1999년에는 본사와 공장, 수백 개 유통 채널과 수천 명 시공 요원을 전산으로 통합 관리하는 ERP시스템(전사적 사원관리)를 도입해 '3일 납기, 1일 시공'을 현실화시켰다. 또 전국 단위 항시 시공망 구축을 불러온 시공 좌석제 도입과 공급망 관리(SCM) 시스템, AS 통합 시스템의 개발도 진두지휘해 원가 절감과 품질 혁신, 서비스 향상을 이뤄냈다.
이어 최 회장은 대한민국 수백만 가구의 도면을 DB로 보유한 3D 설계 시스템 '홈플래너'의 개발도 진두지휘하는 등 지휘봉을 놓기 직전까지 이 같은 경영 혁신을 이어갔다.
◆가구 회사 넘어 '공간을 파는 회사'로 변신
최 회장은 한샘을 가구 회사를 넘어 '공간을 파는 회사'로 변신시킨 리더로 꼽힌다. 최 회장은 한샘에 입사한 1979년 즈음 확산되기 시작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에서 영감을 얻어 '주방 가구'의 대중화를 선도해 나갔다. 그 결과 한샘의 주방 사업은 그전까지 부뚜막에서 밥을 짓던 대한민국의 주방을 '입식 주방'으로 변신시키는 데 일조했다.
최 회장은 1994년 CEO에 오른 후 본격적으로 '공간'을 팔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업체들이 대부분 각각의 가구를 개별적으로 판매하던 것과 달리, 한샘은 소파와 장, 테이블을 모두 합친 '거실 상품'을 선보였고 매장은 이를 통째로 꾸며놓은 '세트'로 판매했고, 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또 2000년대 본격적으로 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뛰어들며 자동차 공정의 일관 생산 시스템을 적용해 주거 공간 창출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했다. 상담에서 설계, 시공, 애프터서비스까지의 전 과정을 일원화하고, 부엌·욕실·창호·마루 등을 한 데 묶은 규격화된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같은 최 회장의 주거 공간에 대한 깊은 연구로 탄생한 '리하우스 패키지' 상품은 편리성과 디자인 완성도는 물론, 집 공사 기간도 일주일 정도로 줄이고 하자도 획기적으로 없앤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단순히 한 상품을 넘어,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샘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최 회장의 마지막 '위기'는 '이케아'가 국내 시장에 진출한 2014년이었다. 당시 시장은 '한국 브랜드는 모두 무너질 것'이라며 이케아의 진출을 두려워했지만, 그는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비즈니스를 통해 이케아와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경쟁 업체들이 온라인 판매와 원가·비용 절감에 매진할 때 거꾸로 영업과 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이케아와의 경쟁 속에서 오히려 매출을 2배 신장시키는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또 투자 못지 않게 직원에 대한 애정도 아끼지 않았다. 최 회장은 소탈한 리더십과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지고 직원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공장장 시절에는 직접 야학을 열고,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52시간 근무제 등 사회 변화 속에 임직원의 회사·가정 양립을 위해 '가고 싶은 회사, 머물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이에 한샘은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 모성보호 제도를 도입하고, 폭언 등 문제를 일으킨 임원을 즉각 해임하는 조치를 단행하는 등 업계 최고 수준의 가정·직원 친화적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한샘은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라며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한 번쯤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며 후배들을 위한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퇴임의 변을 밝혔다.
한편 한샘은 최 회장의 역할을 이어받을 차기 CEO로 강승수 부회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또 그동안 재무를 책임져 온 이영식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해 전략기획실을 총괄적으로 지휘해 나간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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