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종호 기자]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검찰 조사에서 양승태(70) 전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 재판 처리 지연을 박근혜(66)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거래 의혹 '윗선'으로 박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그것도 최측근의 입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16일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지난 14일 조사를 받으면서 "박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재판을 해결할 것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또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차한성(64) 전 대법관을 만났고 그 결과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도 검찰에 밝혔다.
검찰은 2013년 말 서울 삼청동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김 전 실장을 비롯해 윤병세(65) 전 외교부 장관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차 전 대법관, 황교안(61) 전 법무부장관이 모여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재판 진행 상황과 관련해 부적절한 회동을 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재판거래'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연기됐다고 의심되는 재판은 일제 강용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재판이다.
이 재판은 2000년 5월 처음 제기돼 2007년 2월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2009년 2월 2심에서 항소 기각 판결이 났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고, 다음 달 2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그러자 미쓰비시 중공업은 2013년 9월 대법원에 재상고했고, 이 재판이 아직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새로운 쟁점이나 사정 변경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5년이 지난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5년 9월 "관련 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 없이 처리하기 위하여 심층 검토 중"이라는 게 대법원이 대외적으로 알린 이 재판 심리진행 상황 마지막 소식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가 재판 연기를 요구하고, 재판부를 전원합의체로 돌려 기존 판단을 번복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일 외교부 압수수색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통해 이 같은 정황을 입증할 유력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대법원 임의제출을 통해서는 관련 자료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단계에서 박 전 대통령과 차 전 대법관에 대한 조사 계획까진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수사는 2015년 3월26일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된 것으로 돼 있는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 전략' 문건으로 시작됐다.
문건에서 기조실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구체적 접촉·설득 방안' 중 하나로 당시 이병기(71) 청와대 비서실장을 분석했다.
기조실은 당시 이 전 비서실장 최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 복원'이라고 하면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해 청구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적었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이 2013년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와 관련해 청와대와 외교부에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보고를 한 사실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종호기자 jjh1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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