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유엔 개혁과 미래, 특별 기고] ① 이제 한국이 신뢰 회복을 이끌 때다


김은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 석좌교수

[사진=김은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 석좌교수]
[사진=김은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 석좌교수]

[아이뉴스24 정유림 기자] 대한민국은 현재 유엔 정규 예산 분담률 세계 9위다. 한국전쟁 당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생존을 지켜낸 나라가 이제 유엔 운영의 주요 재정 기여국이 됐다. 창설 81주년을 맞은 유엔을 바라보는 우리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더 기여할 것인가를 넘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유엔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는지 살피고 실질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유엔의 신뢰 회복은 한국에도 절실한 과제다.

전쟁과 AI 시대 시험대에 오른 유엔

1950년 한국전쟁에 16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전투병을 보냈고 여러 나라가 의료와 물자를 지원했다. 실종자를 포함해 4만여 명의 유엔군 장병이 치른 희생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뒷받침했다. 1991년 유엔에 가입한 한국은 올해 가입 35주년을 맞았다. 2024~2025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한 경험 역시 한국이 유엔 개혁을 남의 일로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유엔은 1945년 51개 창립 회원국에서 193개국으로 약 3.8배 커졌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여전히 5개국이다. 늘어난 회원국의 이해와 변화한 경제력을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강대국의 거부권에 막힌 평화와 인권의 약속을 누가 실천할 것인가.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 미·중 전략경쟁과 북핵 문제는 유엔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대화와 국제법을 지킬 공통의 장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숫자는 그 절박함을 말해준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25년 말 분쟁과 박해 등으로 강제 이주한 사람은 1억1780만명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같은 해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인구를 22억명으로 추산했다. 인공지능(AI)이 경제와 안보를 재편하는 동안 인류의 상당수는 연결의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다. 이러한 격차는 AI의 혜택을 누릴 기회의 격차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수출과 기술에 의존하는 한국에 전쟁은 공급망과 에너지의 문제이며, 디지털 격차는 미래 산업과 시장, 공동번영의 문제다.

2026년 지도부 선출은 이런 위기를 바꿀 기회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추천을 거쳐 총회가 임명한다. 후보의 비전이 널리 지지받더라도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넘어야 한다. 후보인 레베카 그린스판은 비용 절감을 넘어 평화를 실현할 개혁과 현장 중심의 자원 배분을, 라나 누세이베는 분쟁 예방과 끈질긴 외교, 실질적 합의를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후보의 출신국뿐 아니라,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응하면서 내부에서도 공정한 원칙을 적용하고 조직의 운영과 성과에 책임질 지도자인가다.

2026년 11월 9~27일 도하에서 열리는 ITU 전권회의도 향후 4년의 지도부와 정책·재정 방향을 결정한다. AI 시대의 기반인 전파와 위성궤도, 통신표준을 관리·조정하고, 디지털 격차 해소를 지원하는 ITU의 결정은 한국의 정보통신·우주·AI 산업과 긴밀히 연결된다. 한국은 2014년 부산에서 이 회의를 개최했고, 현재 회원국 분담금 기준 공동 12위인 주요 기여국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인재 진출과 산업적 이해뿐 아니라 후보의 청렴성, 법과 규칙의 준수, 관리 역량과 책임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유엔의 위기는 지도자 한 사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의 지원 감축과 일부 기구 탈퇴, 브릭스(BRICS) 등 협의체의 영향력 확대는 국제협력의 구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자 재건을 위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는 안보리 결의가 환영한 과도기적 체제라는 점에서 별도로 봐야 한다. 이러한 협력 방식이 유엔을 보완할지 권한과 책임을 분산시킬지는 따져야 한다. 회원국은 합의 이행과 재정 의무를 다하고, 유엔은 중복 업무를 줄이면서 현장의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재정 기여를 개혁 리더십으로 바꿀 한국

창설 81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는 한국전쟁 당시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한국의 기여를, 해외 논평에서는 실효성과 대표성, 이중잣대 없는 원칙 적용을 강조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협력과 국제법 준수를 촉구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해 법 앞의 평등과 인권 존중을 강조하는 조직이 내부에서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면 설득력과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직원에게 적용하는 규칙이 최고위 지도부에게도 적용되는가. 국제행정재판소(ILOAT)가 행정결정의 위법성을 인정한 뒤에는 책임 있는 시정과 재발 방지가 뒤따르는가.

필자가 유엔에 대한 공공의 신뢰 문제를 다룬 'Public Trust in the United Nations'를 집필한 동기도 여기에 있다. 유엔 체제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기구인 ITU에서의 경험과 국제노동기구 행정재판소(ILOAT) 판결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살펴본 것은 개인의 피해 구제를 넘어선 유엔 체제의 거버넌스 문제다. 왜 위법한 결정이 반복되고 책임은 회피되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데 그친다면 조직문화와 거버넌스는 바뀌기 어렵다.

한국은 이제 디지털·AI 기술과 산업 역량에 더해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범유엔 차원의 거버넌스 개혁을 이끌 때다. 독립적 감독과 행정정의, 법의 지배와 투명성이 실제 의사결정과 조직문화에 정착하도록 기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립적 싱크탱크 구축, 유엔 공공신뢰지수(UN Public Trust Index)의 개발·활용, 옴부즈만 등 독립적 고충처리·권리구제 장치의 강화를 제안한다. 이는 한국의 리더십을 구체화할 기회다. 재정 기여를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연결하려면 인사 진출과 사업 수주를 넘어 공정한 운영 원칙과 비전을 제안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국의 유엔 정규 예산 분담률은 2025~2027년 2.349%다. 이에 걸맞은 역할은 예산 지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의 세금이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고, 유엔 체제 전반의 지도부가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유엔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지지하기에 신뢰 회복을 위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81년 전의 약속을 오늘의 신뢰로 바꾸는 일에, 도움을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잇는 가교로서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 응답할 때다.

◇김은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 석좌교수는? 김 교수는 국제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디지털 정책, 유엔(UN)·외교 분야 전문가로, 40년에 걸쳐 유엔 체계와 공공·민간 부문, 연구기관·학계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런던대학교에서는 유엔, 특히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유네스코(UNESCO)를 연구해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옥스퍼드대학교, 유엔 지식센터에서 리더십, 조직관리, 개발·데이터 과학 분야의 전문 과정도 이수했다. 2000년부터 2025년까지 ITU에서 고위 리더십 직책을 맡아 국제협력, 디지털 발전·제도 혁신에 기여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교육, 연구·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특별 기고는 유엔 창설 81주년을 맞아 유엔의 가치와 역할, 개혁 과제와 대한민국의 기여를 폭넓게 살펴보기 위해 총 6회로 진행된다.

/정유림 기자(2yclever@i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유엔 개혁과 미래, 특별 기고] ① 이제 한국이 신뢰 회복을 이끌 때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