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정부가 국가계약법 체계를 전면 개편해 '조달 샌드박스'를 법제화하기로 했다. 기존 시행령 수준이던 시범특례 제도를 법률로 격상하고, 특례 적용 범위도 낙찰자 결정 단계에서 계약 체결·이행 전반으로 넓힌다.
재정경제부는 28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혁신기술 촉진을 위한 국가계약 체계 개편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다음달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마련해 발의할 계획이다.
![3대 혁신 계약트랙의 주요 내용 [사진=재정경제부]](https://image.inews24.com/v1/4f027e392f1c04.jpg)
정부는 국가계약법에 조문을 신설해 3개 트랙을 도입한다. 트랙별로 국가계약법 §7의2, §7의3, §7의4가 각각 신설되는 구조다.
첫 번째 트랙은 '개발·구매 연계형'이다. 국가전략기술 개발사업에서 이미 경쟁을 거친 경우, 후속 성과물을 구매할 때는 재입찰 없이 국가계약법상 경쟁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의제한다. 대상은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소부장 특별조치법 등에 규정된 기술 분야다. 소관 중앙관서장이 신청하고 재정경제부 산하 조달정책심의위원회가 의결하면 계약 권한이 부여된다.
정부가 제시한 적용 사례는 AI 로봇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경찰청·소방청이 약정된 수량만큼 구매하는 방식이다. 개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수요가 소멸하면 각 중앙관서에 설치될 예정인 (가칭)혁신계약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계약을 조정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두 번째 트랙은 '성과목표형 계약'이다. 2018년 12월 도입된 경쟁적 대화 계약 방식을 보완한 것이다. 기존 방식은 계약이행 단계의 유연성 부족, 감사 부담, 절차 복잡성 등을 이유로 실제 활용된 사례가 국토교통부의 지능형 교통체계 솔루션 공모사업 2건에 그쳤다.
새 방식은 발주 규격을 확정하는 대신 발주기관과 기업이 대화를 통해 성과목표를 설정한다. 이후 △사전에 가격을 확정하지 않는 개산계약 △공정률이 아닌 성과 달성 여부에 따른 대가 지급 △기술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변경 △목표 미달성 시에도 신의성실 원칙을 지켰다면 매몰비용을 인정하고 행정제재를 면제하는 성실실패 인정 △계약 결과물의 지식재산권 공동소유 등 6개 유연성 요소를 적용한다.
정부가 제시한 적용 사례는 우주항공청의 발사체 사업이다. 발사단가와 수송 물량 등 성과 목표를 제시하면 입찰자 간 경쟁적 대화를 거쳐 최적 제안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사후 정산과 마일스톤 대금 지급 방식을 적용하는 구조다. 정부는 참고 사례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상업 궤도 운송 서비스(COTS) 사업을 들었다. 스페이스X의 발사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기존 정부 주도 개발 대비 개발비를 최대 10분의 1로 절감했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트랙은 '시범특례'다. 2022년 6월 도입된 조달샌드박스를 법률 조항으로 격상하는 내용이다. 기존 시범특례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7조의2에 근거해 낙찰자 결정 방식에만 적용됐다. 개정안은 적용 범위를 계약의 방법, 예정가격 작성, 계약보증금, 대가 지급, 계약금액 조정, 지체상금 등 계약 체결과 이행 전반으로 확장한다. 각 특례는 2년의 유효기간을 두고 연장할 수 있으며, 성과평가를 거쳐 조달정책심의위원회가 법령 반영 여부를 심의한다.
정부가 이번 개편을 추진하는 배경은 연구개발과 공공구매 사이의 제도적 단절이다. 현행 체계에서 연구개발은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른 협약으로, 구매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계약으로 각각 운영된다. 개발과 구매 사이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메워 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기존에 운영 중이던 구매조건부 R&D나 혁신제품 지정 제도는 중소·벤처기업의 초기 판로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구매조건부 R&D는 과제당 지원 규모가 최대 6억원, 개발 기간은 2년 이내로 제한돼 대형 국가전략기술 과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해외에서는 이와 유사한 제도가 이미 상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NASA와 국방부에 연방조달규정(FAR)을 벗어난 별도 계약 권한(OTA)을 부여해 연구개발 시제품이 성공하면 별도 입찰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혁신 파트너십' 제도를 통해 연구개발과 구매를 하나의 절차로 공고한다. 독일 지역교통공사(REVG)가 지난달 3일 자율주행 대중교통 차량 최대 100대 구매를 사전 약정하는 입찰공고를 낸 사례가 근거로 제시됐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국가계약법뿐 아니라 관련 법률 3건을 묶어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계약법(재정경제부), 가칭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특별법(중소벤처기업부), 국방첨단전력사업법(국방부·방위사업청)을 함께 제·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특별법과 국방첨단전력사업법에 담길 계약 특례 규정은 국가계약법 개정안의 특례 체계를 그대로 준용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개정안 통과 이후에는 조달청 내에 지원단을 설치해 성과지표 설계, 경쟁적 대화 운영, 제안서 평가, 마일스톤 관리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혁신계약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고 고의·중과실이 없는 계약담당 공무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특례도 함께 추진한다.
다만 세 법안이 모두 9월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범특례를 법률로 격상하는 과정에서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 위반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지만, 계약 특례의 적용 범위가 계약금액 조정이나 지체상금 면제 등 예산 집행의 핵심 요소까지 넓어지는 만큼 국회 심의 과정에서 재정 통제 장치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쟁이 예상된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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