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황세웅 기자] "불공정한 임금협상을 보며 37년 회사 생활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기분이었고, 회사가 직원들을 무관심을 넘어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6일 오후 경기 수원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정문 앞. 전날 내린 비 덕분에 한여름 더위는 잠시 누그러졌지만 습한 공기 속에서 검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찰 추산 약 7000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은 16일 오후 경기 수원 삼성전자 사업장 정문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집회를 했다. [사진=황세웅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f993768e8a1c0.jpg)
삼성전자에서 37년간 근무한 디바이스경험(DX)부문 직원 우승명 씨가 단상에서 이같이 말하자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탄식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날 집회에는 DX부문 직원들이 주축인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 조합원과 직원 약 700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최근 임금·단체협약에서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만 특별성과급(OPI2)이 지급되는 데 반발하며 DX부문에도 동일한 수준의 보상과 임금교섭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은 지난 5월 정부의 중재 아래 이미 최종 마무리된 상태로, 현 시점에서 재협상을 요구할 근거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노사는 지난 5월 20일 경기고용노동청에서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 배석 하에 잠정합의안에 서명했으며, 이 합의안은 5월 22~27일 진행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3.7% 찬성으로 가결됐다.
임금협약을 저지하기 위해 일부 DX부문 직원들이 법원에 제기했던 가처분 신청도 두 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일부 직원들이 제기한 '임금·단체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으며, 동행노조가 낸 '잠정합의안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각하했다.
회사도 올해 임금·단체협약은 지난 5월 정부 중재를 거쳐 체결된 만큼 재협상 대상이 아니며, 사업부별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경찰 추산 약 7000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은 16일 오후 경기 수원 삼성전자 사업장 정문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집회를 했다. [사진=황세웅 기자]](https://image.inews24.com/v1/3f0a3483a93062.gif)
재협상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지만 검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참가자들은 수원사업장 정문 앞에서 횡단보도까지 약 450m에 이르는 도로를 빼곡히 메웠다. 5명씩 두 줄로 길게 앉은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어졌다.
참가자가 계속 늘면서 오후 6시께에는 도로 한 차로가 추가로 개방됐고, 집회 장소가 인파로 가득 차면서 당초 예정됐던 행진도 취소됐다.
사회자가 "같은 회사, 같은 권리", "선대 회장님의 약속 지금 지켜라"를 선창하자 수천 명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일제히 구호를 외쳤다.
단상을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일부는 팔짱을 낀 채 연설을 들었고, 일부는 휴대전화로 발언을 촬영했다. 임금교섭과 보상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료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DX부문 7년차 직원 김모 씨는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기여를 인정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번 교섭을 보며 그 믿음이 크게 흔들렸다"며 "주식 몇 주를 더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DX 직원들의 노동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추산 약 7000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은 16일 오후 경기 수원 삼성전자 사업장 정문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집회를 했다. [사진=황세웅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61ec88cc59f6a.jpg)
12년차 직원 한모 씨는 "회사는 어려울 때마다 직원들에게 위기 극복과 희생을 요구했고 우리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며 "이렇게 많은 직원이 거리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경영진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DX부문이 올해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는 등 어려운 경영 환경에 놓여 있으며, 최근 지급된 자사주 역시 노사 합의에 따른 보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집회에서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초일류 기업이 되는 날 그 열매와 보람을 임직원과 협력업체가 함께 나누겠다"는 과거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영상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사업장을 향해 "회장님의 약속 지금 지켜라"를 외쳤다.
격앙된 분위기와 달리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질서 있게 자리를 떠났고, 일부 직원들은 사업장 정문 앞에 남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삼성전자 경영진과 노조의 만남도 최근 이뤄졌다. 노태문 DX부문장 사장은 지난달 노조와 만나 경영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회사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동행노조는 조만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도 집회를 이어가며 임금교섭 재논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수원=황세웅 기자(hseewoong89@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