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핵심 데이터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체 AI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문서 작성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외부 플랫폼보다 내부 통제형 시스템을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유한양행 연구원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유한양행 제공]](https://image.inews24.com/v1/e1568b91a5315a.jpg)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헬스케어 기업의 75%가 생성형 AI를 도입했거나 확대 적용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제약·바이오뿐 아니라 의료기기, 헬스케어 서비스 분야를 포함한 것이다. 별도 조사에서는 제약·바이오와 의료기기 업계 응답자의 90% 이상이 생성형 AI가 산업에 영향을 줄 것으로 봤고, 특히 제약·바이오 응답자의 70%는 연구와 후보물질 발굴을 최우선 활용 분야로 꼽았다. AI가 신약 개발 핵심 공정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화이자는 2023년 자체 생성형 AI 플랫폼 도입 이후 단기적으로 7억5000만~10억달러 규모의 가치 창출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맞춤형 콘텐츠 제작 시간은 75% 줄었고, 제조 부문에서는 수율을 10% 높이고 생산 주기를 25%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머크(MSD)도 내부 생성형 AI 기반 임상문서 플랫폼을 통해 임상시험결과보고서 초안 작성 시간을 180시간에서 80시간으로 줄였고, 오류는 5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자체 AI 플랫폼 구축에 나서는 것은 외부 AI를 그대로 쓰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정보와 임상 자료, 제조 공정, 허가 문서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데, 이런 데이터를 외부 플랫폼에 맡길 경우 보안은 물론 규제 대응과 검증 체계 관리도 복잡해질 수 있다. 화이자와 머크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내부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내는 것도 연구개발 효율은 높이되, 핵심 데이터는 회사 통제 아래 두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업종은 다르지만, 삼성전자는 외부 AI 플랫폼 활용의 보안 리스크를 보여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2023년 직원들이 챗GPT에 민감한 소스코드와 회의 내용을 입력한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전자는 사내 기기와 내부 네트워크에서 관련 서비스 사용을 제한했다. 입력된 정보가 외부 서버에 저장돼 AI 학습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상위 제약·바이오 기업들에도 확산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신약 후보물질 설계·선별·분석·최적화 과정을 한데 묶은 ‘유-니버스’를 구축 중이다. 생성형 AI로 신규 화합물 구조를 제안하고, 표적 결합 가능성과 약효 핵심 구조, 물질 특성 등을 분석해 후보물질을 추리는 방식이다. 2024년 웹서비스 운영을 시작했고, 지난해 플랫폼 구축에 착수해 2027년 최적화 시스템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JW중외제약도 자체 AI 플랫폼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가 구축한 ‘제이웨이브’는 기존 ‘주얼리’와 ‘클로버’를 하나로 묶은 통합 플랫폼이다. 500여종의 세포주·오가노이드·동물모델 유전체 정보, 4만여개 화합물 데이터, 20여개 자체 AI 모델을 바탕으로 적응증 탐색부터 약물 설계, 후보물질 발굴까지 신약 개발 전 과정에 활용되고 있다.
결국 제약업계의 AI 경쟁은 단순한 도입 여부를 넘어, 얼마나 정교한 내부 플랫폼을 갖추고 이를 실제 연구개발 성과로 연결하느냐의 싸움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연구개발 속도와 효율을 높이면서도 핵심 데이터를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된다는 의미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관계자는 “바이오 AI 플랫폼은 단순히 구축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데이터 품질 관리와 시스템 운영, 연구 성과 확산까지 이어져야 실질적인 경쟁력이 된다”며 “고품질 학습용 바이오 데이터 확보와 계산 자원 인프라 확충, 통합 서비스 개선은 민간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지속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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