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오래 지켜보면 이기는 경영의 한 가지 불변의 원칙이 또렷하게 보인다. 조직을 살리는 것도 사람의 말이고,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말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경영자는 흔들림 없이 성과를 만들고, 어떤 경영자는 사소한 충격에도 급격히 바닥으로 추락한다. 여러 경영자를 만나며 공통점을 찾으려 할 때마다 하나로 수렴하는 결론이 있다. “잘 듣는 사람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말의 성찬으로 회의를 채우는 경영자보다, 묵묵히 듣고 핵심을 끄집어내는 경영자가 안정되고 성장하는 조직을 만든다. 듣는 힘은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이다.
조직의 위기는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징조는 반드시 먼저 나타나 미래를 보여준다. 문제는 그 징조가 늘 명확하게 보이는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은 균열처럼 시작된다. 구성원들의 작은 불만, 중간관리자의 조심스러운 제안, 시장의 흐름을 짚어보자는 약한 신호들. 이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위기는 이미 도착해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형 사고의 배경에는 늘 같은 패턴이 있다. 리더가 듣지 못했거나, 듣지 않으려 했거나, 듣기 편한 말만 선택했거나.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사진=본인 제공]](https://image.inews24.com/v1/98cb6d7b52afb1.jpg)
조직의 성장 그래프가 아래로 꺾이는 리더의 특징은 분명하다. 듣지 않거나 듣는 척만 한다. 혹은 특정 인물이나 세력의 말만 좇는다. 조직 전체의 목소리는 차단되고 일부의 의견만 과도하게 증폭된다. 그렇게 되면 실제 위험은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나는 세상은 늘 조용한 신호로 먼저 알려준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신호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전쟁터에서 폭격기의 소리가 귀에 들린다는 것은 이미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경영도 똑같다. 위기는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징조로 미리 보여준다. 문제는 그 징조를 듣고 느끼고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달콤한 말은 위험하다. 꾸며진 보고, 긍정적인 해석만 골라 붙인 메시지, 불편한 내용은 걸러낸 보고체계는 조직을 눈멀게 한다. 듣기 좋은 말은 순간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조직의 생존 가능성을 잃는다. 위기는 스텔스 전투기와 같다. 보이지 않고 조용히 다가온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드러난다. 스텔스 전투기가 무서운 이유는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듣기 편한 말만 받아들이는 조직은 레이더가 없는 군대와 같다. 무엇이 다가오는지 알 길이 없다.
기업의 위기는 모든 징후가 현실로 확정되어야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징후 열 개 중 세 개만 현실로 나타나도 이미 위험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직원들의 불만이 늘고, 시장에서 낯선 경쟁사의 움직임이 보이고, 조직 내부의 의견 충돌이 잦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징조가 아니라 경보가 울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 순식간에 목표물에 도달하는 시대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예컨대 포토샵으로 독보적 지위를 누리던 어도비가 생성형 AI 회사들로 인해 위협받게 될 것이라 누가 예상했겠는가. 위기는 언제나 예상 밖에서 온다. 그래서 듣는 행위는 더없이 중요한 감시 체계다.
잘 듣는 리더는 많은 감시자산을 가진 군대와 같다. 각 부대에서 보내오는 작은 신호까지 모으고, 이를 분석해 전체 전황을 파악한다. 반대로 잘 듣지 않는 리더는 감시자산이 거의 없는 군대와 같다. 이미 적이 접근했는데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평상시와 다름없는 판단을 내린다. 이 차이가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는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양한 출처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해석하고, 그 신호가 의미하는 바를 읽어내는 과정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는 솔직한 보고를 허용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불편한 말을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환경,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회의 문화, 실패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투명성이 구성되지 않으면 경영자의 귀는 자연스럽게 막히고 닫힌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구조에 갇히는 것이다.
듣는 힘은 경영의 기술이 아니다. 아주 중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판단이고, 올바른 판단의 출발점은 제대로 듣는 것이다. 듣지 못하면 판단은 무너지고, 판단이 무너지면 조직은 흔들린다. 잘 듣는다는 것은 결국 조직을 살리는 힘이다. 경영자는 누구보다 많은 말을 듣는다. 그러나 진짜 경영자는 많은 말 중에서 무엇이 신호이고 무엇이 소음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듣는 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parkyongh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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