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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3> 연해주의 독립운동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우리는 공항 세관은 익숙하지만, 항구 세관인 해관(海關) 경험은 흔치 아니하다. 2000년 전 로마 시대부터 항구에 세관을 설치하고, 수입품에 관세를 징수했다. 관세(關稅)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세금이다.

우리 일행은 여객선에서 가장 늦게 하선했다. 일행 중 한 명의 가방이 없어서, 부두에 흩어져 있는 여러 짐가방을 뒤져서 어렵게 찾았다. 문제는 사람과 짐가방이 아니라 자동차 통과이다. 통관 전문업자에 위임했지만, 최소한 5일이 걸린다고 한다.

러시아 세관 공무원에 항의 할 수도 없다. 자동차 여행에 따른 감수해야 할 기다림과 체념이다. 향후 10번의 육상 국경의 세관 통과가 미리부터 걱정된다.

러시아 구간 운전에 따른 자동차보험 가입, 영어 표시 국제번호판 부착 등 준비를 병행한다. 다행인 점은 공통 경비를 보관 중인 현대장의 짐가방이 세관검사에서 무사히 통관한 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제재로 달러와 신용카드사용이 금지되고, 사막 등 오지 통과 때문에 현금을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세관 직원이 현대장의 돈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는데, 위쪽만 살짝 보고 아래쪽은 확인하지 아니해서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러시아 공무원은 생트집 잡기 등 악명이 높다고 여러 여행자에게 들었다. 1만 불 초과 세관 미신고로 처음부터 곤욕을 치를 뻔했는데 다행이다. 향후 교통법규 준수, 육상 국경 세관 통과 시 현금 분산 보관 등 큰 공부를 한다.

첫째 날 나, 미세스 송(내 처), K교수, K회장은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살았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독립운동가의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신한촌 기념탑 철문에 감사 편지 리본이 붙어있다. [사진=윤영선]

처음 방문지는 '신한촌(新韓村)' 기념탑이다.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1937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조선인이 살았던 동네에 세워진 기념탑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북쪽 도시라서 7월 날씨는 서울과 달리 덥지 아니해서 걸어가기로 했다.

러시아 키질 문자를 모르기 때문에 도로 표시판은 도움이 안 된다. 낯선 외국 도시의 초행길임에도 휴대폰 구글맵을 켜고 걸어가니 큰 불편이 없다. 한 시간 걸어가니 약 90년 전 강제로 이주당한 조선인 거주 지역이다. 태평양이 내려 보이는 언덕배기 마을인데,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은 어느 단독주택 문 앞에 설치한 '서울 거리'라는 작은 문패뿐이다.

서울 거리 근처에 있는 신한촌 기념탑을 찾기 힘들어 지나가는 러시아 여성에게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기념탑으로 안내해 준다. 서민 아파트 단지 모퉁이에 설치되어 있다. 그나마 철조망으로 막혀서 가까이 접근은 안 된다.

이번 여행을 위해 외국어 통역이 가능한 삼성 갤럭시S 24 신형 휴대폰을 구입해 왔다. 휴대폰을 켜고, 러시아 여성과 처음으로 한국어와 러시아어 대화를 시험해 봤다. 불편하지만 짧은 문장의 대화는 가능하다.

기념탑의 기둥 셋의 의미는 '남한인, 북한인, 고려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미세스 송이 근처 공원에서 야생화를 따와서 약식으로 헌화하고 위로의 묵념을 했다. 철문에 누군가 붙여 놓고 간 빛바랜 노란색 리본에 쓰인 문구를 읽으니 숙연해진다.

'조국의 후손임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근, 현대 한민족 수난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국가가 멸망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격동기, 조선 역사상 최대의 변혁기이며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혼란기에 살았던 함경도, 평안도 주민들 애환이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일행이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주택가에 설치된 '신한촌'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윤영선]

19세기 말기 조선시대 두만강 국경지대에 살았던 주민들이 관리의 폭정과 부패, 과도한 세금을 피해서 두만강을 넘어 중국의 길림성,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했다. 사람이 안 사는 황무지를 개척해 농사를 지어 생업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연해주 지역은 청나라의 영토였는데, 1860년 청나라가 서구 국가와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러시아에 빼앗긴 지역이다. 최초 이주는 1863년 두만강 근처의 13세대가 러시아 영토에 이주한 것으로 러시아 관리가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말 연해주 지역은 인구가 많지 않아서 러시아는 조선인의 이주를 관대하게 대했다. 러시아인은 고려인을 '카레이스키'라 부른다. 고려 사람의 뜻이다. 1937년 가을 스탈린은 연해주 지역에 살던 약 17만 여명의 조선인들을 강제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유대인과 같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시작이다. 조국이 없는 망국의 국민을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오늘날 약 50만 명의 고려인 4세, 5세들이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역사는 계속 진행형이다.

강제 이주 당시 신한촌에 아마도 수만 명이 살았을 것이다. 1930년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대학교, 중등학교, 많은 교회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독립군에도 입대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도 지원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국권 피탈의 주역이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 일본 경찰은 총기와 자금 지원 등 배후를 캐기 위해서 안 의사를 심하게 고문했으나, 안 의사는 끝까지 자백하지 아니하고 이듬해 여순감옥에서 총살됐다.

최재형 선생이 살았던 건물 입구에 기념패가 부착돼 있다. [사진=윤영선]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역사이다. 안 의사에게 거사 자금을 지원하고, 안 의사 사망 후 유가족을 보살펴준 사람은 최재형 선생이다. 안 의사는 거사 얼마 전 연해주에서 손가락 단지를 하였고, 평소 최 선생 집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최 선생은 19세기 말 어린 시절 함경도 부모님을 따라 연해주로 가서, 러시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러시아어 실력으로 군납사업 등을 해서 당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고, 교민 사회 후원과 독립운동에 많은 헌신을 하셨다.

최 선생은 1920년 일본군에 의해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체포되어 즉결 처형됐다. 최 선생 기념패는 러시아 정부가 세운 것으로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3개 언어로 돼 있다.

정작 우리말 설명은 없다. 영어, 중국어 등 이름표기가 '최재형'이 아니고 '최재현'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 영사관에서 향후 이름 오자도 바로잡고, 한국어 설명도 추가해서 다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념패 내용은 최재형(1858-1920)은 한국의 애국자, 독립운동가, 지도자이다. 1962년 한국 정부의 건국훈장을 수상했다. 한국 언어와 한국문화 보급에 힘쓰고, 러시아문화를 한국인에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 6월 모 신문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렵게 사는 최 선생의 외증손녀 주택을 KT와 보훈처가 고쳐줬다는 훈훈한 기사를 읽었다. 장장 6시간을 걸었다. 걷기 불편한 여름 샌들을 신고 함께 걸었던 미세스 송은 내일은 운동화를 신겠다고 말한다. 힘들지만 울림이 있는 첫날을 보냈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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