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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정병덕·윤정해 부부…생과 사·기쁨과 슬픔 함께한 파로호


[조이뉴스24 정상호 기자] 화천댐이 조성되면서 생긴 인공호수, 강원도 양구의 파로호. 물안개가 그윽한 파로호에는 60여 년 평생을 노 저어가며 그물질을 해온 어부, 정병덕(81) 씨와 윤정해(77) 씨가 산다.

열다섯, 열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던 두 사람. 그러나 첫 딸을 낳고 병덕 씨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정해 씨는 병든 시부모를 모시며 3년간 첫딸을 홀로 키워야 했다.

시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으로 고된 시집살이도 견뎌온 정해 씨, 하지만 부부는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첫딸 옥분이를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파로호에서 잃었다.

가난했던 시절, 첫 딸 밑으로 줄줄이 육 남매와 식솔 많은 시집 살림을 꾸려야 했던 부부는 참척의 고통 속에서도 그물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부부는 딸을 잃었음에도 육 남매를 길러내고, 부부의 삶을 이어온 파로호에 여전히 기대어 산다.

새벽 다섯 시, 동이 트기 전부터 부부의 하루는 시작된다.

병덕 씨는 익숙하게 트랙터를 운전하고 정해 씨는 트랙터 짐칸에 병덕 씨가 특별히 마련해준 전용 의자에 앉아 간다.

배의 키를 잡은 병덕 씨와 그물을 내리며 호흡을 맞추는 정해 씨. 서로에게 눈을 떼면 위험해지는 작업인 만큼 50년, 함께 일해온 부부의 노하우가 빛을 발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가르쳐준 파로호에서 인생의 동반자로서 여전히 함께 길을 걷는 파로호의 연인, 두 사람의 물길을 KBS 1TV '인간극장'에서 따라가 본다.

'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정병덕 윤정해 씨.[KBS]
'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정병덕 윤정해 씨.[KBS]

강원도 양구군과 화천군 사이에 걸쳐있는 이곳, ‘파로호’. 1944년, 본래는 ‘화천호’라는 이름이었지만 6.25 전쟁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곳이라는 의미로 ‘파로호’가 된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온 정병덕(81), 윤정해(77) 씨 부부가 살고 있다.

집에서 호수까지는 트랙터로 약 10여 분 거리, 병덕 씨가 운전하는 트랙터 짐칸에는 아내 정해 씨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병덕 씨가 만들어준 아주 특별한 의자가 있다.

세월이 변하여 그물까지 짓던 병덕 씨의 탁월한 손재주는 오직 아내만을 위한 특혜가 됐다.

새벽 다섯 시, 매일 이 시간이면 이미 밥상을 물리고, 호수에 나갈 채비를 서두르는 부부, 새벽 3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단다.

평생 몸에 밴 습관이 6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다.

강원도 산골짜기 가난한 살림 형편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6남매를 배곯지 않고 키우기 위해 병덕 씬 파로호에서 어부로, 아내 정해 씨는 만평 농사일을 지어가며 악착같이 살았다.

병덕 씨가 어부 일을 잠시 그만둔 건, 평화의 댐이 생기면서 약 8년간이었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때, 병덕 씨는 심마니로, 약초꾼으로 가장의 역할을 이어갔다.

처음엔 환갑 때까지만 어부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던 두 사람이지만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한 탓일까,

쉬는 것이 더 힘들다는 부부는 어느새 "죽을 때까지 어부로 살겠다"라고 얘기한다.

사는 데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은 게 소망이란다. 그래서인지 부부의 배는 쉬지 않고 그물을 놓는다.

'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정병덕 윤정해 씨. [KBS]
'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정병덕 윤정해 씨. [KBS]

산골 호숫가, 외딴 마을에서 직접 그물을 짜고 물고기를 잡았던 병덕 씨는 손재주 좋기로 소문났던 사람이었다.

온 동네가 탐내던 믿음직한 신랑감 병덕 씨를 가장 먼저 마음에 둔 사람은 정해 씨의 어머니. 어머니의 성화로 부부는 열다섯,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달콤한 신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해 씨 나이 열일곱에 첫 딸을 낳고, 그 무렵 병덕 씨는 군대에 입대했다.

병덕 씨가 떠나자 시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산골 집엔 해수병에 걸린 시어머니와 어린 딸, 그리고 정해 씨 여자 셋만 남았다.

대소사 많은 시집 살림과 농사일까지 해내는 어린 며느리가 안쓰러웠던 시어머니. 고부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자며 친 모녀지간처럼 정을 나눴고 정해 씨 역시 시어머니에게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부부에게 불행은 한순간에 찾아들었다.

바로 열다섯 살이었던 큰딸 옥분이가 친구와 함께 목욕하러 파로호에 간 그날, 삶의 터전이자 생계를 책임져줬던 호수에서 딸을 잃었던 것, .

'엄마랑은 다르게 환한 곳에서 살고 싶다'라고 했던 딸이건만, 그곳이 천길 물 속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육 남매의 부모였던 부부는 다시 파로호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야 했다.

부부는 배를 띄울 때마다 일렁이는 물살 어딘가에, 행여 딸이 있는 건 아닐까. 멍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세월은 몇 년이라고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평생을 했던 그물질이 이제는 딸을 기억하는 방법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부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의 연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부부의 지난 60여 년은 손발이 닳도록 오직 6남매, 자식들을 위한 헌신의 세월이었다.

도시로 나간 둘째 아들은 수면제 중독에 걸려 생사를 오갔었고, 시집간 둘째 딸은 IMF를 맞아 직업을 잃고, 생계가 막막했었다.

다행히 부부의 지극정성으로 둘째 아들은 회복되었고, 둘째 딸 역시, 병덕 씨가 농사지은 옥수수를 가져다가 뻥튀기 장사를 시작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됐다.

첫 딸을 잃고, 다시는 허무하게 자식을 놓치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었던 부부, 인생의 태풍을 그렇게 넘기고 보니, 파로호에 몰아치는 태풍쯤이야 두렵지 않다.

병덕 씨는 60년 파로호에서 노를 저어온 베테랑 어부답게 올가을 몰아친 태풍에도 그물질을 하며 지혜롭게 만선의 목표를 이뤘다.

그렇게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부부라서일까. 병덕씨는 아내의 일이라면 어디든 따라나선다.

심지어 여자들만 북적대는 미용실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내가 홀로 외출을 할 때면, 5분 거리도 안 되는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고, 배웅하는 일도 예삿일이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와 대식구 거느리며 고생만 했던 아내,

병덕 씨는 지금도 자신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물질을 하는 아내를 보면, 그녀와 결혼해서, 그녀를 사랑해서 정말 미안하다.

6남매를 키우고, 반세기를 함께 견뎌내며 삶의 순간들을 켜켜이 쌓아 온 부부. 이른 새벽, 안개도 걷히지 않는 파로호에서 오늘도 서로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노부부의 그물에는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이, 묵직한 노부부의 사랑이 줄줄이 걸려있다.

KBS 1TV '인간극장' 파로호의 연인 1부는 21일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된다.

조이뉴스24 정상호 기자 uma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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