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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웅본색’ 왕용범·유준상 “관객과 함께 세계시장 개척”


“목표 두고 불가능한 시도 하나씩 도전…뮤지컬도 한류 가능”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이 작품에 대한 제일 큰 목표는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는 마카오에서 상설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홍콩 누아르의 시초이자 정점으로 꼽히는 영화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탄생시킨 왕용범 연출은 초연 개막 후 이어지는 해외 러브콜과 관객 반응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홍콩 찍고 중국 투어하고 마카오에서 상설공연 하는 걸 계획하고 있는데 그보다 라스베이거스 진출이 더 빠를 것 같아요. 어떻게 알았는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조만간 공연을 보고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전세계 비디오 시장을 석권했던 하나의 문화였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에도 설득력이 있구나’ 싶었어요.”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왕 연출은 “옛날엔 찾아다녀도 안 봤는데 이제는 우리가 공연을 하면 와서 보고 문의하고 어떻게 자기네 시장에 접목시킬지 고민한다”며 “김연아 선수와 BTS(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이 전세계에 한국의 예술적 재능을 알리지 않았나. 이제 뮤지컬까지 한류로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웅본색’은 의리와 배신이 충돌하는 홍콩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송자호·송자걸·마크 세 인물의 서사를 통해 우정·가족애 등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명륜2가 한 카페에서 뮤지컬 ‘영웅본색’의 주연배우 유준상과 왕 연출을 만났다. 유준상이 왕 연출과 함께 작품 얘기를 하길 원해 마련한 자리였다.

“‘삼총사’부터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 ‘벤허’ ‘영웅본색’까지 연출님과 창작뮤지컬을 쭉 이어왔어요. 연출님과 나와의 기록으로 계속 남겨지는 거라서 함께 하고 싶었어요.”

신뢰로 이어온 인연과 함께 한 작업 및 성과 등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기대는 더욱 커졌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만들겠다고 결심한지 꽤 오래됐다고 들었다.

왕용범 “10년 전 인터뷰에서 내가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을 만들겠다고 했다. 젊었을 때 꿈을 이뤄가는 것 같다. 유준상 선배님과 창작이 불가능한 시도들을 계속 해왔다. ‘프랑켄슈타인’ 처음 할 때는 머리에 나사 박힌 괴물 이야기가 되겠냐고 했는데 흥행을 했다. 처음 해외에 수출한 우리나라 대극장 뮤지컬로 지금도 일본에서 공연되고 있다. ‘벤허’도 되겠냐고 했는데 됐다. ‘영웅본색’도 ‘그걸 뮤지컬로 어떻게 하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관객들이 좋아해주신다. 목표를 두고 하나씩 이뤄나가니까 쾌감도 있더라. 목표와 도전이 없으면 관객의 지갑을 여는데 수월하고 진부한 작품만 하게 된다.”

- 판권 계약은 어떻게 성사시켰나.

왕용범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홍콩의 포춘스타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사실 쉽지 않았다. 뮤지컬이라는 게 어떤 장르며 왜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하려고 하는지 상세히 설명을 했다. 우리가 1편과 2편 판권을 다 가지고 왔다. ‘영웅본색’ 시리즈의 장점들을 뮤지컬로 다시 탄생시켰다.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포춘스타에서 5명이 와서 보고 너무 좋다고 하셨다. 원작에 폐를 끼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원작자들이 좋아해주시니까 뿌듯하더라.”

- 해외 반응 등을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이 시점에 제작을 한 것인가.

왕용범 “그렇다. 우리가 한국 시장만을 겨냥했을 때는 다양한 시도를 하기 어렵고 손익분기점 등을 계산하다보면 큰 투자를 하지 못한다. 시장을 넓게 보고 가면 투자가 가능하다. 영화도 그렇지 않나. 예컨대 유준상이 영화를 찍으면 경쟁상대가 ‘어벤저스’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웅본색’을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이 경쟁상대다. 그 이상의 감동을 드리고 경쟁을 해야 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갔고 수십 년간의 노하우가 결집돼있다. 우리는 이제 걸음마 하는 콘텐츠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시장을 내다보지 않고 투자를 한다면 계속 우물 안에 있는 거다. 영화 ‘신과 함께’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큰 시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아직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단계다. ‘시장이 개척된 다음에 투자하자’ 이러면 그 시장도 없는 거다. 관객들이 함께 시장을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사랑해주시면 BTS나 봉준호 감독처럼 전세계 라이브 공연장에서도 한류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그 역사를 만들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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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용범 “그때의 향수와 더불어 누아르가 보통 말이 많지 않은데 속마음들을 노래로 표현하니까 색다른 맛에 즐거워하신다. ‘영웅본색’ 세대가 아닌 분들은 뉴트로 감성을 매우 신선해 하신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고 약속과 정을 지켜나가는 모습들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변치 않는 가치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배우들이 워낙 설득력 있게 연기해줘서 연출로서 만족하고 있다. ‘이번에도 불가능한 것들을 해냈구나’ 하는 자부심이 있다.”

유준상 “LED 1천개가 100개 이상의 장면을 계속 전환한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인 뮤지컬이다. 나도 연습실에서 설명만 들었을 땐 ‘이게 과연 될까’라고 생각했다. 리허설을 하면서 장면들을 처음 보고 정말 실감나더라. 배우들끼리 얘기했다. 우리가 영화 한편을 찍고 있다고. 그런 정성이 들어간 무대라 집중에 집중을 하면서 다음 신으로 넘어간다. 하면 할수록 재밌다. 내 나이에 하루에 두 번 공연하는 게 어려운데 두 번 공연해도 끄떡없다. 그게 작품의 힘이 아닌가 싶다. 두 번 공연 다 에너지가 달리 쓰이고 하면 할수록 깊이를 찾아내게 된다.”

왕용범 “무대디자이너가 그림만 1천장을 그렸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영화 같은 뮤지컬’이라고 말씀해주실 때가 제일 기분 좋다.”

- 제작비 부담이 컸을 텐데 LED를 쓴 이유가 궁금하다.

왕용범 “제작비가 많이 든 건 사실이다. LED를 쓴 이유는 두 가지다. 우리가 기억하는 홍콩은 빛의 도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콘셉트를 세울 때 LED라든지 영상으로 빛나는 홍콩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전환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결코 영화보다 템포가 떨어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보다 장면수가 조금 더 많다. 우리가 겹겹이 둬서 입체적인 무대를 구현했다. 영상인지 실제 무대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무대에 푹 빠져서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왕용범 “무대는 결국 배우를 빛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배우가 홍콩에 실존한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배경적인 것들을 둔 것이지 결코 그것을 보러 오라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캐스팅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당시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에 뒤지지 않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로 캐스팅을 했다.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 형제애나 의리가 더 절절하다. 각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 그들이 무대에서 쌓아나가는 에너지들이 LED로 표현되는 무대들과 잘 조화가 된다.”

- 이번 작품의 경우 배우들에게 자율성을 좀 더 부여했다고 알고 있다.

왕용범 “내가 느끼는 ‘영웅본색’의 인물들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배우가 자기가 느끼는 인물들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해내길 원했다. 같은 배역이라도 배우들의 색깔이 다 다르다. 각 배우가 느끼는 게 달라도 의리라든지 지켜야 될 약속이라든지 보편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합은 굉장히 좋다.”

- 액션신을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왕용범 “사실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는데 홍콩 누아르는 서양 누아르보다 화려하다. 어떻게 보면 쇼적인 부분이 많다. 오우삼 감독의 액션들이 화려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 작품은 한편으론 쇼뮤지컬이다, 안무들을 많이 신경 썼다. 지금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중 가장 춤신이 많을 것이다. ‘댄스컬인가’라고 할 정도라서 관객들이 다양한 흥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커튼콜도 무척 화려하다.

유준상 “관객들이 우리 작품을 커튼콜 맛집이라고 얘기해주시더라. 나는 커튼콜의 마지막 순간을 최선을 다해 응집시킨다. 끝나는 순간 함성이 콘서트 함성 이상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자부심이 뭐냐면 창작이라는 거다. 재밌고 흥미롭고 멋진 작품이다.”

왕용범 “누아르라고 해서 폼만 잡는 작품이 아니라 모두의 축제처럼 만들고 싶었다. 관객들이 그러한 노력들을 알고 커튼콜 때 마음을 열고 함께 즐겨주는 것 같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왕용범 “무대가 잃어버리면 안 될 덕목들이 있다. 무대를 소중히 하는 마음, 소위 무대정신이라고 하는데 유준상 선배님은 그런 것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큰 기둥이 되는 분이다. 우리가 ‘무대에선 거짓말하면 안돼’ ‘무대는 우리의 신전이야’ ‘절대 관객 앞에서 내 컨디션을 들키면 안돼’ 등의 생각이 같다. 서로의 집요한 에너지가 닮은 것 같다. 선배님은 굉장히 정감 넘치고 대본도 가장 빨리 외운다. 유준상 선배님이 대본을 다 외우기 전에 먼저 외워야 되는 후배들의 숙명이 있을 테니 어떻게 보면 후배들한테 불편한 선배다.(웃음) 그러한 열심들이 무대에서 나타나고 배역 간 많은 소통을 한다. 연출이 할 수 없는 배우들의 마음까지 채워주신다. 무엇보다 창작을 하다보면 산을 넘어야 될 때가 있다. 유준상 배우가 믿어주니까 ‘저게 되겠어’ 하는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단축된다. 같이 하면 두려울 게 없다.”

유준상 “대본 보면 엄청 많은 게 빼곡하게 적혀있는데 다 연출님 디렉션이다. 공연 전 항상 대본을 정독하는데 하나하나 다시 훑어본다. 그만큼 연출님이 해준 디렉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자극하면서 가는 것 같다.”

- 창작 초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유준상 “보통은 1막을 먼저 만들어 와서 일주일 정도 연습한 뒤 2막을 만들어 온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1막과 2막을 다 했다. 내가 연출님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런 부분이다. 창작인데 머릿속에 1막과 2막 모든 이야기가 배치된 거다. 쉬는 시간에 연출님 노트를 봤는데 아무것도 안 적혀있더라. 예전엔 도면이라도 있었다. 적어놓은 게 컴퓨터에 있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하셨다. 믿어지지 않게 1막과 2막 동선을 긋고 바로 그 다음주에 런 스루에 들어갔다. 신별 연습도 처음의 큰 동선과 거의 일치하면서 갔다. 신뢰를 안할 수가 없다.”

왕용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막 동선을 계속 그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포기할 수 없었던 게 이번엔 유준상 배우조차도 의심을 했다. ‘이게 가능할까요’ ‘공연 조금 늦게 시작할까요’ ‘될까요’ 하시더라. ‘이 의심을 믿음으로 바꿔드려야겠다’ 싶어서 선배님이 하루 종일 시간이 되는 날 콕 집어서 이 악물고 끝까지 갔다.(웃음) 선배님이 믿어도 시너지고 안 믿어도 시너지다.”

 [사진=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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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내가 이번 작품에 ‘이래서 왕용범 왕용범 하는구나’라는 확신이 든 게 첫 리딩 연습부터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작품의 진행을 간결하고 매끄럽게 이야기 해주시더라. 덕분에 내가 어떤 방향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는 느낌들이 확 잡혔다.”

왕용범 “보통 큰형님 역할을 하면 각 잡거나 젊은 캐릭터에 묻히기도 하는데 유준상 선배님은 진짜 멋지다. ‘이래서 유준상 유준상 하는구나’ 느꼈다. 이번에 인생캐릭터를 만난 분들이 몇 분 있다. 현대 소재다 보니까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공감 가는 연기를 해주시는 것 같다.”

- 지치지 않는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유준상 “내가 나이가 있다고 지친 티를 내거나 하면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요즘은 앙상블 친구들의 부모님과 내 나이가 비슷하다. 그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무대예술은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관객과 함께 하는 거다. 무대정신을 끊임없이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연하면서 일지를 쓰는데 쓸 말이 항상 많다. 늘 뭔가 부족하고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원동력인 것 같다.”

 [사진=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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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용범 “선배님께 3년 전 ‘프랑켄슈타인’ 일본공연 초연할 때 ‘단테를 하시죠’라고 했다. 오랫동안 단테의 ‘신곡’을 준비 중이다. 기술발전 수준이 내가 생각하는 정도가 안돼서 조금 더 되면 내놓을 예정이다.”

유준상 “나는 그 얘기 듣고 바로 단테 관련 책들을 사서 읽었다. 심지어는 엄청 큰 화보집까지 샀다. 마침 그때 전시도 있어서 가서 보고 도록을 샀다. 그렇게 준비하는 거다. 힌트만 주면 바로 그에 관련된 자료들을 미리 읽어보고 공부해놓는다.”

왕용범 “선배님 팔순 땐 예술의전당에서 무대를 물로 가득 채워놓고 배 하나 띄워서 ‘노인과 바다’를 1인극으로 하고 싶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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